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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Jul 04. 2023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

다음의 댓글 서비스 축소와 관련하여

최근 다음에서 댓글 서비스를 크게 바꾸었다. 원래는 스포츠, 연예 기사를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댓글을 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기사가 게재된 후 24시간 동안만 댓글을 달 수 있다. 그마저도 카카오톡 같은 채팅방에 접속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다는 방식이라 접근성도 별로 좋지 않다. 갑론을박이 격하다. 찬성하는 쪽은 악성 댓글을 원천 차단하고 기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하는 쪽은 여론을 형성할 수 없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어디서 많이 본 주장이지 않은가?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인터넷 실명제가 논란되었을 때 나왔던 논리와 비슷하다. 당시 찬성하는 쪽은 책임감 있는 인터넷 이용을, 반대하는 쪽은 성역 없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결국 댓글 서비스는 인터넷 실명제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문제되는 사안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를 보자. 대부분의 외국 언론사 사이트에서는 댓글 서비스를 제한적으로만 제공한다. BBC나 가디언과 같이 댓글창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CNN이나 뉴욕 타임즈처럼 일부 기사에 대해서만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댓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비판하는 여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이미 제공하고 있던 서비스를 철회하는 것과 처음부터 제공하지 않는 것에는 감정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서비스를 제공할 역량이 되는데도 정책적으로 막아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후자의 경우라 하여 기술적인 실현 가능성이 달리 평가되어야 할까? 외국 언론사들이 댓글 서비스를 제공할 역량이 되지 않아 아쉽게도 제공하지 못 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자명하다. 양자가 달리 취급되는 것에는 감정적인 것 이상으로 무슨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 터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표현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었다. 수많은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각각은 또 수많은 표현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이 된다. 오늘날의 표현의 자유가 전통적인 표현의 자유와 대비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물리적으로 제한되거나 법적으로 제한된 공간에서만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표현을 할 수 있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여론을 창출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표현의 자유의 확장을 의미한다.


* 새로운 여론은 전례 없는 의견이 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의견이라도 새로운 조합으로 묶이는 것 또한 포함한다. 가령 새로운 커뮤니티 사이트가 생긴다고 가정하면, 다른 사이트에서 정확히 동일한 인원 구성으로 단체 이주를 해오지 않는 이상, 새로운 공론장이 생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음과 외국 언론사의 사례를 비교해보자. 다음의 경우 처음부터 댓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공론장으로 기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댓글 서비스를 불편한 형태로 개조한 것은 확장된 표현의 자유를 회수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라고 평가된다. 다음도 서비스를 개시한지 오래되었고 여론의 색채가 짙은 편이라 댓글 서비스의 축소는 특정 여론을 억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외국 언론사의 경우 처음부터 댓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애당초 공론장으로 기능하지 않도록 봉쇄했다. 언론사가 제공하는 기사의 내용을 제외하고는(물론 이것이 몹시 클 것이다) 여론 형성에 기여하지 않았고, 표현의 자유가 확장되지도 않았다. 잠재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확장되지 않도록 기회를 박탈했다는 점에서는 정치적일 수 있을지 몰라도 특정 여론을 억압한다는 비판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 또한 전자와 같은 비판도 다소 어불성설일 수 있다. 공간으로서 표현의 자유는 현실에 구체화되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간을 구현할 때 일부 기능에 제약을 두는 것은 제한이라기보다는 약속이고 악습이라기보다는 문법이다.


다음을 크게 비판할 의도는 없다. 여러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비스를 축소했어야 할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다음을 비롯한 수많은 사이트가 그 존재 자체로 가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라는 정치적 함의를 언급하고 싶었을 뿐이다. 사이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점도 고려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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