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과정을 단순화한 어느 해석은, 삶의 장면들은 뇌내 필름에 시간순으로 저장된다고 한다. 두개골을 열어 부위를 잘 찾으면 조그만 필름을 조심스레 꺼낼 수 있고, 역량에 따라 일부 장면을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심지어 중간을 잘라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면 어떤 기억을 수정 내지는 삭제했다는 기억이 또 남아서, 없애고자 했던 그 장면이 다시 그 장면이 포함된 필름을 제거하는 장면으로써 새롭게 기록된다. 이것을 무한히 반복한다면, 그러니까 그 장면이 포함된 필름을 제거하는 장면을 제거하고, 그 장면이 포함된 필름을 제거하는 장면을 제거하는 장면을 또 제거하고, 등등을 반복한다면 처음에 문제된 그 장면은 무의미할 정도로 작아져 완전히 없어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무한한 과정에 이르지 못하고 유의미한 횟수로 마무리된다면 미세하게나마 세상에 존재하는 장면이 되어서 영구히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런 과정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간접적으로 남은 기억은 아무래도 원본만큼 크고 생생하지는 않다. 필름이야 원래 낡기 마련이므로 가만히 놔둔 기억도 최소한 빛은 바래게 될 것인데, 인위적인 노력에 따른 기억 편집은 그 과정을 가속시킨다는 데 의의가 있다. 예쁘고 슬픈 기억이 자연스레 희미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고통스러운 아무개에게, 그 노력은 과거를 내쫓지는 않으면서도 그것에 잡아먹히지도 않겠다는 발버둥같은 것이다. 한편 무한히 그 노력을 반복할 수 없는 여생의 태생적인 한계는, 모든 기억을 어떻게든 품고 가야 한다는 교훈으로 느껴진다.
그러한 편집조차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기억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온전히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르거나 곡해할 것 혹은 남겨둘 것을 가리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다. 차라리 시간의 부패를 기대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