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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Dec 28. 2015

양치질

꼭 해라

매번 양치질을 하기 위해 화장실을 방문한다. 익숙한 몸짓으로 주황색 Crystal(상표명이다) 칫솔을 빼어든다. 솔은 탈모가 심한 편이다. 몇십 개의 이와 혓바닥을 만나는 그는 낮이든 밤이든 언제나 열정적이다. 단 3분의 뜨거움을 위하여 본인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그를 가슴 깊이 존경한다. 그대는 분명 에로스가 예수와 같이 환생한 모습일 거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사물은 역시 그대뿐일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칫솔질이 에로틱한 이유는 비단 칫솔에 사람의 타액이 잔뜩 묻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혀에 대한 깊숙한 접근성 때문이다. 혀는 겉으로 드러난 인간의 신체 부위 중에서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보인다. 시뻘건 근육이 팔딱팔딱거리는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을 보는 듯하고, 연한 타액에 가끔씩이나 노출될 뿐인 입술에 비해 매시간 진한 농도의 타액에 온몸이 뒤덮이는 혀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붉은 신체 기관이다. 감각 역시 훌륭한 편이어서, 침으로 들어오는 음식물만 요리조리 녹여낼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상대방의 마음까지 녹여버릴 수 있다. 키스와 애무가 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양치질은 항상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비록 내가 내 자신을 간지럽히면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처럼 남이 움직여주지 않는 칫솔을 붙잡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알아두어야할 점은 솔 하나하나를 내 의지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말인즉슨 나의 의도에 걸맞지 않게 움직이는 솔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는 남이 내 입 안에서 칫솔을 요리조리 움직여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진동 칫솔은 정말 미친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혼미해져서 일단 일반 칫솔만 쓰고 있다.


양치질의 과정은 필히 이를 먼저 닦고 마지막에 혀로 마무리해야하는 것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혀부터 건드렸다간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혀가 깜짝깜짝 놀랄 수 있다. 이를 먼저 닦는 것은 양치질의 본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기도 하고, 가끔씩 삐죽삐죽 나와있는 솔이 혀를 건드렸을 때 점점 전희를 시작하다가 마지막에 최고의 쾌감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양치질은 관계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무리는 더 가관이다. 입에서 하얀 거품을 내뱉고 가글하는 과정을 거친 뒤, 입가를 쓱쓱 닦는 것으로 마무리를 맺는다. 여기서 입으로 거품을 뱉은 뒤 다시 한 번 양치질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자제해주길 바란다. 3분 이상의 양치질은 잇몸에도 안 좋을 뿐더러 혀를 더 지치게 만든다. 양치질도 생각보다 힘 쓰는 운동이다. 양치질을 하고 나면 숨이 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적당히 시원한 물로 가글을 끝내고 난 후의 상쾌함. 그것은 각종 세제 물질로 범벅이 된 치약에서 느껴지는 인공적인 쾌감이 아니다. 그것은 그 짧은 시간에 용케도 큰 일을 치렀다 진실된 만족감. 마침내 그와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가슴 벅차는 행복감. 양치질은 인간의 꿈을 이루는 과정이다. 나는 매일 네 번 꿈을 꾸고 느끼고 이루어낸다.


그대에게 진심으로 양치질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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