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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Feb 29. 2016

드라마 완주! 소감!

내 인생을 바꾼? 드라마!

매주 보던 드라마가 방금 끝났고 정말로 끝났다. 오늘로 마지막 방영이었다. <내 딸, 금사월>을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미안하다. 사랑하진 않았다. 마약을 챙겨먹는 사람들에게 마약에 대해 물어보라. 그들의 대답은? 예상되지 않는가? 인생을 망친 몇 밀리그램의 하얀 가루에 대해서 좋게 말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어째서 멈추지 못하는가?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강제로 주입당한 첫 경험의 짜릿함이 뇌의 해마에 잔인하리만큼 선명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10월 초, 어머니가 시청하시던 주말 밤 10시의 그 자리에 나는 심심하다는 이유로 앉지 말아야했다. 그게 내 2015년 4분기, 2016년 1분기를 바꿨다.

때문에 주말에 술이나 마시면서 밤을 샌다는 선택지는 더이상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신나는 수시생 오티 때에도 나는 막차를 지키고 싶었다. 11시 전에만 도착하면 마지막 부분이라도 시청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일찍 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고, 술 마시는 시간이 10시를 넘어가자(호프에서 집으로 가는 데에는 한 시간이 걸린다)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어렵지 않았다. 그 호프집에는 TV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채널도 11번이었다. 사장님은 주문이 비는 동안 신득예의 원한과 금사월의 갈등, 금혜상의 악질과 주오월의 피해를 고개 들어 시청하고 계셨다. 나이스 초이스, 사장님! 나는 물을 가지러가는 척하면서 사장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너도 저거 보냐?"

"예. 금혜상 벌받는 꼴을 꼭 봐야겠어서요."

소리가 작았지만 주인공들의 포즈만으로 충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어느새 이 지경까지 온 거다. 새로운 얼굴들을 힘써 맞이해야할 입장이었는데도, 나는 죽음과 복수와 질투가 넘쳐나는 TV 너머의 세계가 훨씬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뭐,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누군가 단조로운 리얼리티와 역동하는 픽션 중 하나를 고르라 하면 나는 일단 두 형용사끼리 자리를 바꾸면 안 될까요? 한 번 물어보고 그건 안 된다, 하는 답이 오면 그 때부턴 진심으로 고민할 것이다. 삶은 무대고 사람들은 그 위의 연기자다 운운하는 명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 틀렸다. 우리 삶은 무대가 아니라 빌딩이고 우리는 연기자가 아니라 시청자다. 요컨대 팝콘이나 뜯으면서 TV를 멍하니 지켜봐야했을 만큼 내 일상은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재미있는 일상을 살면 되잖아?"

"그건 귀찮아."

"..."

굳이 친구에게 고민상담을 요청했던 게 무안할 정도의 대답이었다. 의지박약은 모든 일을 망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더 대단한 건 가만히 냅두면 스스로 증폭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팝콘이나 뜯었을 뿐인데 암덩어리가 꾸물꾸물 자라더니 대장과 소장, 폐까지 기어들어와 전이하고 말았다. 암 4기입니다... 하는 말을 듣고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수술하면 4개월 정도는 연장할 수 있겠습니다만... 의사 선생,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야?

"목숨을 연장할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만..."

"제발 알려주십쇼. 뭡니까?"

"끊어. 만화랑 드라마."

""싫어."요."

""그럼 죽어야지."요."

죽어?

"기회는 한 번뿐이야. 일단 지금 보는 게 끝나길 기다려. 이제 거기서 새로운 걸 더 보지만 않으면 돼. 하나 더 보겠다고 컴퓨터나 TV 앞에 앉는 순간 끝이야."

"..."

2015년 9월 5일부터 2016년 2월 28일까지 방송하는 주말특별기획 드라마가 51화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값싼 노력으로 값싼 희열을 얻던 주 2회 회당 1시간의 시간들이 신득예 금사월 주오월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다음 이 시간에는 겉만 다른 새로운 해피엔딩이 5개월 남짓 펼쳐질 것이다.

... 리모콘, 박살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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