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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r 13. 2018

일이 너무 없단다

"일이 너무 없네요..."


거실로 출장 갔던 1팀이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놀랍게도 1팀은 거실에 갔을 때 그대로였다.


"하나, 둘, 셋, 넷. 어? 모두 계시네요?"


"그렇다니까. 우리 한 번도 안 불려나간 거 알아요?"


"이럴 거면 왜 보냈는지 몰라. 뭔가 필요해서 보낸 거 아니었어?"


1팀의 팀장 A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떠들었다. 사실 A 말고 다른 이름이 있을 테지만 이름짓기 귀찮으니까 A라고 쓰겠다.


"뭐, 애초에 식탁에 너무 많다고 그쪽으로 보내진 거였으니까요..."


"식탁에서는 일 좀 있었나?"


"어제 한 두세 분? 아니, 한 분이었나? 부엌으로 가셨어요. 프라이팬에 고추장이 묻어가지고."


"오, 그래? 어떤 운 좋은 사나이가 가셨나?"


"누구긴 누구예요. E지. 걔는 틈만 보이면 어떻게든 위로 비집어 올라가려고 애를 쓰던 놈 아니에요."


"기회주의자 새끼. 출세하려고 안달이 나더니 진짜로 출세했네."


"출세는 무슨... 나 젊었을 때는 널린 게 일자리요, 널린 게 간부자리였어. 일손이 하도 부족해서 두세 군데 취업한 애도 있었다니까."


"그거 불법 아니에요?"


"불법인지 아닌지 뭐가 중요하냐. 이제 와선 어기지도 못하는데."


"그것도 그렇네요..."


식탁은 한숨으로 가득 찼다. 그 바람에 식탁에 있던 B, C, D(모두 1팀)가 바람에 날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앗!"


"자네들, 괜찮나?"


A가 물었다. 바닥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괜찮습니다!"


"올라 수 있겠어?"


"뭐, 올라가라면 올라 가겠는데..."


B, C, D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B가 용기내어 말했다.


"팀장님, 저희 그냥 여기 있을게요!"


"뭐?"


A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의심하는 듯했다.


"저희 여기 있겠다고요!"


C가 다시 외쳤다. A가 당황한 얼굴로 물어보았다.


"왜? 도대체 왜?"


"그 위에 있어봤자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요!"


D가 외쳤다.


"그래도 자네들, 거실로 간다 했을 땐 엄청 좋아했었잖아! 언젠가 다시 거실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일이 있을 줄 알고 좋아한 거죠! 근데... 근데 없었잖아요!"


B가 말했다. 멀어서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약간 울먹이는 것 같았다.


"그, 그건..."


A는 말문이 막혔다. 그를 대신해 Z가 외쳤다.


"바닥에 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지난번에 F, G 보셨잖아요! 굴러다니는 쓰레기라 생각하고 바로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릴 거라고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먼지만 쌓이느니, 차라리 죽고 물티슈로 다시 태어나겠어!"


C가 울부짖었다. 식탁 위는 심각한 동요에 빠졌다. C가 절대 언급해서는 안 될 단어, '물티슈'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물티슈는 이들의 주적이다. 물티슈가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휴지 사용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쓰이는 곳은 오직 화장실뿐이며, 이마저도 비데의 등장으로 사용량이 급감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어린 친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연배가 있는 이들은 자신의 친구들이 쓰이는 것을 보면서 자의로 남아있기를 선택하거나, 심지어 한 번 쓰였는데도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반면 청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들었던 말이 경제위기다 취업난이다 저성장이다 이딴 말밖에 없었다.


"여기에 미래는 없어! 나도 죽을 거야!"


H를 선두로 수많은 젊은 장(張)들이 떨어졌다. A는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그러면 안 돼! 삶을 포기하지 마!"


"굶어 죽으나 떨어져 죽으나 똑같아요! 오히려 후자는 내 의지라는 점에서 더 나아요!"


H~Y는 이렇게 떨어졌다. 식탁 위에는 이제 A와 Z뿐이었다.


"자네는..."


망연자실한 A가 오랜 침묵 끝에 Z에게 물었다.


"자네는, 왜 떨어지지 않지?"


Z도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Z는 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휴지심(롤휴지 다 쓰면 남는 거)이었다.


"저는, 사실 화장실 휴지입니다. 덜 쓴 채로 남겨져서 저하고 심만 남았는데 일반 곽티슈인 척하면 쓰일 줄 알았거든요."


A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곽티슈로는 안 되겠네요. 다시 화장실 휴지로 돌아가야겠습니다. 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Z는 꾸벅 인사를 하고 휴지심에 자신을 붙였다. A는 이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21(=26-AEFGZ)장의 휴지와 식탁에 놓인 달랑 한 장 달린 롤휴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삶과 사회에 대한 회의로 그는 식탁을 떠났다.


나는 아직도 그를 찾고 있다.




영상: https://youtu.be/z4f__Fdwe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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