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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Jul 21. 2019

거리

세상에 바꾸기 어려운 것이 많지만 물리법칙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우연히 나는 이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완전히 없애거나 새로이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단 하나의 법칙의 단 하나의 값, 예컨대 어쩌고 상수라든지 저쩌고 벡터라든지 정도만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야기했다.

"부호를 바꾸는 것도 돼요?"

안 될 것 없다고 했다. 나의 결심은 굳어졌다.

"만유인력의 부호를 바꾸어주세요. 서로를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밀어내는, 만유척력이 되게요."

이유를 물었다. 중력을 비롯한 만유인력은 이 모든 안정의 근간일 터.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사람들은 물리적인 거리가 관계의 주요변수라고 생각하죠. 거리감은 거리와 정비례하고, 애정과 이해는 거리와 반비례한다는 식의 논리 말이에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유일하게 성립하는 것이 있다면 그놈의 거리가 오해, 상처와 정비례한다는 것. 가까워질수록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하죠. 그 간극에서 슬픔이 싹을 틔우고 갈등이 자라나요. 애정으로 상처를 극복할 수 없다면 우리 모두 서로를 가까이할 이유는 없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만유인력 하나를 수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겁니다. 단 하나의 마이너스로 우리는 좋아질, 아니, 적어도 덜 불행해질 거예요. 부탁할게요."

그는 작대기 하나를 긋고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펜을 떼면 끝나는 거라고 말했다.

"주저하지... 마시죠."

세상 전부가 허공으로 뜨고 나의 마음은 반대로 차분히 가라앉은 밤. 나는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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