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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Aug 28. 2019

혼자서 있는 일

경계근무를 서면서 어쩌다가 부사수 없이 혼자 있게 되었다. 평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열심히 떠들다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하면서 내려가는 일이 잦았는데, 오늘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 했다. 혼자 서 있으니 자연히 생각과 상상만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가장 두려워하게 되었다.


입대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같이 지내며 생기는 갈등조차 그러려니 넘길 정도로 무감각한 나였지만, 그것은 고독으로 본인을 회복시킬 수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밖에서도 남들과 어울리는 일을 크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책과 연필을 친구 삼아 지냈으니 군생활이 녹록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혼나기도 했고, 당연하다는 듯 없던 일을 넘겨받았으며,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무엇보다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오늘 하루를 궁금해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토닥여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것은 집착이었다. 그녀에게도 그녀의 삶이 있고 고된 일이 있었으며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이 또한 있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어야 했다. 이기심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던 위선적인 나에게 이별은 차라리 가벼운 처벌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죗값을 치르는 것 또한 고통스럽긴 매한가지지만.


오늘의 외로운 경계근무 동안 생각이 상상으로, 상상이 망상으로 이어지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며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헤아리는 나를 발견했다. 이러면 안 된다고 자신을 다그쳐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 진득한 외로움 동안 이제는 정말로 혼자임을 깨달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 해 이룰 수 없는 꿈속에서 방황했다. 온몸이 정신 차리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녀에게 연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부로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려 버티고 있다.


이제는 혼자 있기가 두렵다. 그녀와 이어질 수 없는 혼자라는 게, 이룰 수 없는 몽상만 떠올리는 혼자라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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