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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Sep 07. 2019

단ㅇㅓ

사랑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평범하게 사용하던 모든 단어가 지난 3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고, 이곳저곳에서 날아오는 비수가 하루에도 여러 번 내 가슴을 관통한다. 사랑을 담아내기에 내 마음이 너무 좁고 편협했음은 분명하다. 실연의 무게가 차라리 그 그릇을, 다시는 쓸 수 없도록 깨뜨렸으면 좋겠다. 조각조각 남아 있는 그릇에는 짝사랑 정도만 담기면 그만이다. 그마저도 상대방의 손에 닿았다가 상처라도 입는다면 나는 또 사과하고, 그릇을 더 잘게 부수는 일에 몰두할 것이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어제를 기억하는 일, 내일을 기약하는 일은 모두 무의미해졌다. 나는 실낱 같은 오늘을 산다. 감각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잔바람에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실낱 한 줄. 군대는 이 실낱을 그녀의 소식이라는 풍파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일까, 아니면 나의 과거와 미래를 거세한 증오스러운 칼날일까. 사실 군대의 잘못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물리적인 격리가 오히려 그녀에게는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시간을 제공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스스로가 매우 한심하다. 누구를 위한 최선지 생각하지 않은 사랑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15개월 동안 기다려온 전역이 벌써부터 두렵다. 밖에서 그녀의 근황을 듣게 될까 두렵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주칠까 두렵다. 그때까지 마음의 정리를 못 할까 두렵다. 잘못된 선택으로 그녀에게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줄까 봐... 나 자신이 가장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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