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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Sep 20. 2019

파묻혀 살기

차라리 잘라서 덜어버리는 선택을 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가슴에 난 큰 구멍을 바쁨, 여유 없음, 무리해서라도 할 일을 만들어내는 강박으로 메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었다. 팔딱거리는 심장에 시멘트를 들이붓는다고 출혈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빠른 속도로 썩기 시작해서, 실컷 오염된 피가 전신을 지배할 즈음 나는 쓰러질 것이다. 혹은 나의 본능이 진정 의도한 바가 이것 아니었을까? 생생한 의식으로 고통스럽게 기억을 덜어낼 바에야 차라리 지쳐 쓰러지고, 본의 아니게 기억을 상실하거나 적어도 기억을 되새기느라 고통스러울 일은 없는 상태. 다행히 후자만큼은 성과를 내고 있는 듯하다. 처음으로 보고 싶다 후회된다는 생각과 함께 일이 너무 많다 힘들다를 떠올린 하루가 되었으니까. 이참에 과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아쉽게도 과음은 할 수 없는지라... 장소가.


적당히 파묻혀 지내고 있다. 일과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이곳에서. 사랑을 함부로 기대하지 못 할 만큼 개개인성이 뚜렷하지 않은 이곳에서. 전에 없었던 사랑을 저만치 뒤로하고, 앞으로의 사랑을 하나씩 접어가면서 나의 양심이 제자리를 되찾기를, 사랑은 오직 구경할 것 다만 그녀를 좇아서는 안 될 것 다짐을 거듭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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