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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Oct 15. 2019

춥다

추워...


가을을 허락하지 않는 기후에 너도 여유가 없는 모양이구나, 쉽게 연민해버리는 밤이다. 분명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상의를 훌훌 헤치고 반팔로만 일과를 지내왔더랬다. 그러나 한기는 야밤부터 슬금슬금 밀어 들어오더니 어느새 나의 손발을 에워싸고 너에겐 수족냉증이 있어, 다시금 깨우쳐주고 있다. 맞아, 그래서 나는 함부로 남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 반대로 남들의 손을 잘 잡는 편도 아니고. 그러나 그만큼 따뜻함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도, 알고 있어. 알고 있었어. 이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손을 꼭 잡고 있으면 마치 세상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 앞으로 이루어야 할 것 등등이 따스한 손길 앞에서는 전부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오직 그녀를 만나기 위함이었을 뿐이라 하더라도, 나는 오히려 신에게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어리석음은 일체의 아픔도 파고들지 못 하게 하겠다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약속을 사채 쓰듯 남발하곤 했다. 행복에 눈이 멀어 진정 보아야 할 아픔을 보지 않았다. 그렇게 밀린 빚이 터지고, 모든 관계가 원점이 됐다. 아니, 원점보다 그 아래로. 한 순간의 양수도 허락하지 않는 제3사분면의 세계로.


예고도 없이 찾아온 냉증이었다. 평소 '이별'이라는 단어에 공포감을 느꼈던 것은 이별이 정말 두렵기도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생 볼 일 없는 것이라 단정지었기 때문이다. 이미 사태는 벌어졌는데도 마음도 머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 했다. 헤어지든 사귀든 여기서 얼굴을 보지 못 하는 것은 다름이 없었다. 휴가를 나가면 당장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시감에 빠져 지냈다. 솔직히... 지금도 헤어나왔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가끔의 꿈과 멍때림에서 찾는 그녀의 모습이 여전히 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린다. 이런 망상은 진작에 포기했어야 하는데.


그러나 오늘도 나의 손은 차갑고 너의 손은 따뜻할 것이기에... 조금은, 진실을 엿본다. 따뜻한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나는 꾸준히 차가웠다고. 너의 더움을 앗아갔을 뿐 나는 결국 변하지 않았다고. 잡으면 잡을수록 너에게 냉기를 나눠줄 뿐인 이 연애는 멈춰야 했음이 마땅하다고... 나의 손발이 너에게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군대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긍정까지 품게 되었다. 추워서, 몹시도 추워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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