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당신과 함께 갔던 장소를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떨려서 모든 순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어요. 슬픔에만 유독 질긴 기억력을 보이는 나의 몸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의 꾸밈없던 미소와 그 웃음소리, 둘을 감싸던 따뜻한 공기와 기분좋은 나른함, 귀를 간질이던 속삭임과 온몸을 벅차오르게 해준 사랑한다는 말. 그러나 손끝에 닿는 건 온전한 당신도 온전한 나 자신도 아닌, 조각난 마음이 품고 있는 단편적인 추억과 행복함뿐. 둘만이 영원히 하나가 된다는 지독한 착각에서 아직은 헤어나오지 못 했나봐요. 당신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일이, 가장 어렵고 끔찍한 일로만 느껴져요.
나는 겨우 오늘이 되어서야 당신을 다시 만날 용기를 얻었어요. 이별 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만남을 말이에요. 나는 오직 당신의 안부를 묻고 지난 날들이 정말 고마웠고 미안했고 사랑했다고 이야기할 거예요. 나의 첫사랑이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함께한 3년을 절대 잊지 못 할 거라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 멀리서 응원하겠다고도 말할 거예요. 가끔씩 생각나면 언제든 연락해도 좋다는 말도, 꼭 전하고 싶어요. 그 얇은 기대가 저에게 살아갈 힘을 줄 것 같아서요. 바보 같게도.
두 달 뒤에 만나요. 그때까지 이 용기가 꺼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