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gom Dec 15. 2019

자신

이별 후 나는 철저히 말초적인 활동에 집중했다. 일과시간에는 몸을 마구 쓰고, 비는 시간에는 자기계발 등 온갖 의무를 부여하며 감정을 외면하도록 단련했다. 그러나 모든 하루가 끝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제때 처리하지 못 한 상실감이 밀린 고지서처럼 들이닥쳤다.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울음을 삼키는 것으로 갈음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누구보다도 타인으로 취급하고 싶었다. 이별, 자존감, 자기혐오 등 나의 모든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고 매번 괜찮은 사람을 연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도망칠 수는 없었다.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가슴에 난 구멍이 블랙홀마냥 안쪽에서부터 나를 잠식함을 느낄 뿐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구멍 안으로 손을 넣어 조심스레 나의 심장을 만져보았다. 조그만 삶의 기원은 초라하고 쓸쓸해보였고, 누구의 위로도 울면서 받아들일 만큼 간절해보였다. 그제야 나는 나를 단 한 번도 위로한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떠난 후 그를 위로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홀로뿐이었는데.


야기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의 유효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펜을 맞잡던 두 손은 이제 하나만이 남을 것이다. 손은 시렵고 펜은 새삼 무겁겠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쓰일 수 있기를, '나'를 오롯이 주어로 쓸 수 있는 용기가 나를 바로잡아주기를, 함부로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