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성의 '편향'을 넘어서라

꼼꼼한 잡담 2 |

by 꼼꼼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은 매우 특별하다고 여긴다.

나아가 자신이 속한 회사, 조직, 교회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겠지만,

이것이 선을 넘으면 아집이 되고, 객관적 판단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된다.


요즘, 미국 정부가 보이는 우월감을 넘어서서 차별적이고, 차별을 넘어 공격적인 모습은 고유성 편향의 예시라 할 수 있다. 협업도 소통도 갈등의 해소도 없는 불확실만 키워내는 고집이다.


개인과 공동체는 그 나름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으며,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편향적인 고유성은 그 고유성 때문에 존재가 고립되는 주요 원인이 되고 만다.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언제나 그 책상이 그 책상이구만… 도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지? ’

이 주인공은 이제 사물들의 이름을 바꿔 부른다. ‘침대를 사진이라 부르고, 의자를 시계라 부르고, 책상은 양탄자라 부르고, 신문은 침대라 부르고, 거울은 의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변화와 독특함은 그를 점점 고립되게 만들어 외톨이가 된다.

책 내용은 허무하기보다, 각 존재의 고유함이 가지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고유함이 사회성을 잃을 때, 고유함이 역사성을 잃을 때, 고유함이 창조성을 잃을 때

고유함은 편향으로 치닫는다.


사회성을 잃은 고유함은 공동체 안에서 ‘기여’가 아닌 ‘단절’과 ‘분열’을 초래한다.

역사성을 잃은 고유함은 ‘깊이 없이’ 표층에만 몰두하는 주장만 반복할 뿐이다.

창조성을 잃은 고유함은 불확실한 시대의 새로운 대안이 아니라 ‘정체라는 함정’에 빠지게 한다.


나는 더 탁월하다는 착각.

나는 더 개혁적이고 변화에 익숙하다는 착각.

나는 더 잘하고 있다는 착각.


어쩌면 ‘특별해야 살아남는다’는 강박 때문에 생겨난 '착각'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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