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변'이 '달변'보다 나을 때

꼼꼼한 잡담 |

by 꼼꼼

신앙을 이야기할 때,

달변의 논리가 사실 함정이라는 점을 발견한다.


눌변이 가진 모호함과 더듬거림,

서투르나 꾸역꾸역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감이

정직하다.


삶의 여백을 기꺼이 수용하면서도,

감당해야 할 분주함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 버둥거림이 곧 신앙이지 싶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외치는

‘사랑하며 살자’는 구호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모른다.


차라리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어떻게 할지 몰라 애타는 이들의

버둥거림이 곧 사랑이지 싶다.


신앙도 사랑도,

잘 아는 척하는 달변가가 쏟아내는 언어에 있기보다

잘 모르기에 진정으로 조심히 다가가는 몸짓에 있다.


어눌한 언어와 몸짓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일으켜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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