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만의 단어장을 연다.

꼼곰하게 정의하기.

by 꼼곰

배움의 시작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무지의 지(無知의 知)', 즉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곤 한다.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익숙한 것을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단어를 사용한다. 경험적으로 습득한 그 단어들은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튀어나온다. 맥락적 의미를 꿰뚫고 있기에 소통에 큰 불편함도 없다. 이미 알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기에 우리는 사전적 의미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가령 누군가 "이것이 냉면의 백미(白眉)이지!"라고 감탄할 때, 우리는 그 느낌을 안다. '아, 아주 맛있다는 뜻이구나' 혹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구나'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정작 '백미'가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다. "백 가지 맛(百味)이라서 백미인가?"


중국 후한 말, 형주 지방의 마(馬) 씨 5형제 중 가장 뛰어났던 '마량'의 눈썹이 흰색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을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래서 여럿 중 가장 뛰어난 존재를 일컬어 '백미'라 칭한다. '맛(味)'과는 관계가 없는 단어다. 이처럼 익숙함 속에 숨겨진 오해는 생각보다 많다.


경험에 의존해 맥락적 의미만 알고 사는 것은 마치 '농경시대 촌장의 지혜'와 같다. 촌장의 말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깊이가 있고, 그 마을 안에서는 통용되는 진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표준화되지 않았고, 명확한 정의가 없다. 이런 식의 소통은 한 치 건너 두 치로 넘어가면 왜곡된다.


체계있게 작성된 모든 문서들(법조문, 논문, 절차서 등)은 서두에 "용어의 정의"가 써있다. 용어를 정의하는 행위는 복잡하게 이어지는 내용을 서로 오해 없이 이해 하기 위한 필수 절차 인 것이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촌장의 지혜'만으로는 중심을 잡기 어렵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묵직하게 지켜줄 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은 나를 둘러싼 의미들을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에서 나온다.


정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의미의 실타래를 풀어 한 줄의 문장으로 본질을 꿰뚫도록 압축하는 건 고도의 지적 활동이다. 간단명료해 보일수록, 그 뒤에는 치열한 고민이 숨어 있다. 그래서 내 삶의 단어들을 정의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사고 훈련이 된다.


나아가, 막연하게 부유하던 의미들을 내 언어로 붙잡아두면, 삶의 방향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반이 단단해지는 것이다. 상상력은 이 단단한 기반 위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기반 없는 상상은 그저 '허황'된 꿈에 불과하지만, 명확한 정의와 단단한 인식 위에서 피어나는 상상은 '획기'적인 창조가 된다.


다만, 이 나만의 사전은 영원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언제든 '리비전(Revision, 개정)'할 수 있는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시대가 변하면, 과거에 내린 정의도 수정되어야 한다. 유연하게 나를 갱신하는 사람은 '어른'이 되지만, 과거의 정의에 갇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칫 '꼰대'가 되고 만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물살을 가르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심을 잡고 흐름에 맞춰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정 또한, 정리 해놓아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의미를 나의 언어로 정의 하려 한다.


나의 정의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오해없이 당신과 나누기 위해.


나의 단어장을 연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