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곰하게 정의하는 기획(企劃)
누구나 한 번쯤은 방황의 터널을 지난다. 그 터널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무기력하게 하루를 흘려보내기도 한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정작 손에 잡히는 것은 스마트폰뿐이다.
화면 속 SNS 세상은 눈부시게 화려하다. 누군가는 호텔에서, 누군가는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인생의 절정을 맛보는 듯하다. 그들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를 비교하며 우리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혹은 반대로, 쳇바퀴 돌듯 바쁜 일상 속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라는 허망함에 빠지기도 한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희미하다. 희망과 목적지 없이 뛰기만 하는 발걸음은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인생을 계획적으로 살아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 조언 때문일까. 사실 우리는 계획의 베테랑들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정해진 계획에 맞춰 사는 법을 훈련받았다. 학교에는 정해진 등교 시간과 학사일정이 있었고, 심지어 어린이집에서는 졸리지 않아도 낮잠 시간에는 계획에 따라 잠을 자야 하는 혹독한 훈련까지 그 어린 나이에 견뎌냈다.
그런데 왜 이 "계획의 베테랑"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방황하는가?
우리는 '남이 짜놓은 계획'에 맞춰 사는 법에 익숙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인생의 핸들을 직접 잡아야 하는 시기가 오면 이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른다. 신입 사원 시절 일을 잘하던 사람이 과장급이 되어 스스로 판을 짜야할 때 갈피를 못 잡는 이유도 이와 같다.
우리는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에도 많이 나오는 '계획'이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하지만, 정작 그 본질을 스스로 정의해 본 적이 없다. '계획'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기획(Planning)'이다. 계획은 기획이라는 큰 틀 안에 존재하는 하위 개념이다. 기획을 하지 않으니까,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기획은 조직과 개인행동에 핵심 요소이다. '기획예산처'는 정부의 핵심 조직이다. 기업의 심장이 '기획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획은 방향을 잡는 일이고, 계획은 일정표다. 우리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지 못해 방황했던 이유는, 기획의 앞 과정을 생략한 채 '실행 리스트'인 계획을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앞의 과정을 생략하니, 계획을 할 거리가 없는 상태로 계획을 세우려 한 것이다. 이러니, 계획을 세워보라고 하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
기획은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복잡해 보이지만 뼈대는 간단하다. "목표설정 → 현상파악 → 과제도출 → 시행계획 → 시행/평가 → 개선반영" 이 과정의 순환, 반복이다. 우리는 여기서 "목표설정 → 현상파악 → 과제도출" 이 세 과정을 빼먹고 계획을 하려고 하니, 거리가 없는 것이다.
인생을 주제로 앞의 이 세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목표 설정 (욕망의 직시): 내가 진짜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내 안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단계다. 목적지 없는 운전은 방황일 뿐이다. 내가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내 목표가 된다. ( "행복"에 대한 정의에서 상세히 설명함. )
2. 현상 파악 (현재의 긍정): 현재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다.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시작점을 확인할 수 있다. 목표로 설정한 욕망에 대한 공급을 할 수 없는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 ( "긍정"에 대한 정의에서 상세히 설명함. )
3. 과제 도출 (자기 입법): 원하는 욕망에 대한 공급이 "가능한 상태" vs "불가능한 현재 상태" 사이의 간극(Gap)을 확인한다. 이 Gap을 채울 수 있는 과제를 도출한다. 과제를 수행할 기한을 정한다. 이는 나 스스로 입법한 "계획"이 된다. 이런 계획은 그간 주어졌던 계획 하곤 질이 다르다. 해야 될 것은 그냥 하는 것이다. ( "의무"에 대한 정의에서 상세히 설명함. )
어려운 과정은 다 끝났다.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계획의 단계로 들어왔다. 평생 훈련해 온 '성실함'과 '실행력'을 발휘하면 된다. 우리는 계획만 주어지면 또 기가 막히게 잘 해내는 사람들 아닌가?
오늘날 이 '기획'을 대신해 주는 곳이 '사교육'이다. 인터넷 강의를 보면 별의별 강의들이 존재한다. "00 기업 면접 강의", "연애 강의", "유튜브 강의" 등등. 나중에는 '숨 쉬는 법'조차 강의로 나올 기세다.
강의료를 결제하면 자동으로 지식이 습득되는가? 아니다.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사교육은 지식, 스킬을 손에 쥐어 주는 곳이 아니다.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다. 사교육 시장은 본질적으로 '돈을 받고 과제 리스트와 계획을 짜주는 곳'이다.
이제는 'Know-Where'의 시대다. 교육자료는 인터넷에 널려있고, AI를 통해 더욱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사교육의 역할은 점점 더 "과제 리스트와 계획을 짜주는"것에 한정되어 가고 있다. 기획 능력을 갖추면, 남이 짜준 리스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그려낼 수 있다. 더해, 기획을 타인에게 제공하는 역할로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
세상에 '완벽한 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계획"이라는 말은 '애송이의 언어'다.
경험 없는 '애송이'만이 이것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해야 하는 일 또는 하기로 한 일은 그냥 하는 것이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책상 앞에서는 보이지 않던 구체적인 방법론이 생겨난다. 길을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고, 실패를 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목표 자체가 수정되기도 한다. 보장된 것은 없다.
단, 방황할 틈 따윈 없을 것이다.
방황을 끝내고 싶다면 오늘부터 인생을 진지하게 기획하자.
행복을 위해 채우고자 하는 욕망을 선별하고,
그를 위한 공급이 가능한 상태와 불가능한 현재 상태 사이의 Gap을 파악하고,
그 Gap을 채우기 위한 과제를 도출한다.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방법과 시간을 넣으면 계획이 된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이것도 막연할 수 있으니,
제일 효과가 큰 것을 하나 귀띔하자면,
내 몸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가꾸는 것이다.
내 몸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현상'이자,
기획의 결과가 가장 잘 드러나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기획을 진지하게 하면,
시간이 아까워 죽을 지경인 마법 같은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혹자들이 왜 "생산성"을 높이는데 미쳐 있는지 공감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원하는 상태' - '현재의 상태' 사이 간극(Gap)을 채우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