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대(共感帶) : 사실을 넘어 '삶의 형식'으로

꼼곰하게 정의하는 공감대(共感帶)

by 꼼곰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을 조사해 보면,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항상 상위에 랭크된다.


'특별한 것이 없어도, 같이 있는 것 만으로 즐거운 사람.'
'내가 재미있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느낌을 주는 사람.'
'두세 시간 통화 후,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해야 될 것 같은 사람.'


소위, "티키타카"가 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아주 즐겁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상대와 감정을 나누면서 유대를 쌓는다. 낯선 사람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가장 흔히 쓰이는 방법은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고향이 어디세요?”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
“주말엔 주로 뭐 하세요?”


공통점을 찾는 것은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비즈니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공통점을 찾는 것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좋은 방법(수단)이다.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목적은 공통점(수단)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공감대(목적)를 쌓는 것이다.


예로, 동향 출신이라는 사실은 건조한 데이터일 뿐이다. 공감대는 "그 동네 골목에서 맡았던 저녁밥 짓는 냄새가 그립다"는 헛헛함을 공유할 때, 혹은 "그 학교 앞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느꼈던 막막함과 숨참"을 함께 떠올릴 때 비로소 싹튼다.


흔히 ‘공통점이 많으면 친해지기 쉽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그 사실 안에 비슷한 감정이 숨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껍데기는 공유하지만, 알맹이인 감정은 공유되지 않는 '단절'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한다.


현대 철학의 거인,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하나의 '게임'이라 불렀다. 축구의 규칙을 모르는 사람에게 축구공이 그저 가죽 덩어리에 불과하듯, 서로의 감정적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주고받는 정보는 의미 없는 기호의 나열일 뿐이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한 언어가 가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삶의 형식(Form of Life)'이다. 단순히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는 능력이 아니라, 그 언어가 뿌리내리고 있는 문화와 신체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는 게임이다. "새벽 공기를 마실 때의 맑은 기분"이란 언어는 그 공기에 폐부를 찔려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이다.


감정을 전하지 못하고 사실만을 나열할 때, 우리는 각자의 사전적 언어에 고립된다.


사실에서 감정으로 한 발만 더 나아가자는 것이다.


낯섦에 어색함이 가득한 "소개팅"이라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오늘 소개팅을 하게 된 남자 A와 B가 있다. 상대방 C가 마음에 든다. A, B는 오늘의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 그래서 즐거운 대화 분위기를 만드려 노력한다.


남자 A

A : 00 씨는 한가할 때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세요?
C : 걷는 것을 좋아해서 산책을 해요. 그래서 그런지, 걸음도 좀 빠른 편이에요.
A : 저도 걷는 거 좋아하고, 걸음 빠른 편이데, 나중에 같이 산책해요.
C : 네, 기회(같이 걷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가 되면..


남자 B

B : 00 씨는 한가할 때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세요?
C : 걷는 것을 좋아해서 산책을 해요. 그래서 그런지, 걸음도 좀 빠른 편이에요.
B : 저도 걸음이 좀 빠른 편이에요. 그래서 누가 앞에서 걸어가면 꼭 앞질러야 직성이 풀리는데, 혹시, 00 씨도 그래요?
C : 네 맞아요. 걸을 때 누가 앞에 있으면 답답해요.


상대와의 즐거운 대화를 위해 남자 A는 공통점을 밝히는 데서 끝났다. C에게 '나는 당신과 공통점이 있습니다.'는 정보를 전달을 하는데 그쳤다. (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반면, 남자 B는 공통점을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한발 더 나아가 공통점을 가진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을 C에게 제시했다. 공통점을 통한 감정의 공유, '공감대'형성을 하려 한 것이다.


공감대 형성은 체크리스트를 들고 "우리, 10가지 중 7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는 과정이 아니다. 공통점을 찾는데 그치면, 대화가 단절된다.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또 다른 공통점을 찾아 나서다 보면, 취조가 된다.


공감의 대화가 지속되면 서로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감정이 확인되면"이 사람은 나와 다르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서로 감정을 나누며 진솔한 울림이 전해지면 그 생각은 "이 사람은 특별하다."로 발전하게 된다.


단, 너무 나아가면 궁예가 된다. (세상은 정도의 차이다.) 그래서 조심스레 "한 발만"이라고 했다.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면, 공통점이라는 '사실의 개수'를 늘리는 수집가가 되지 말고, 그 속에 숨겨진 '마음의 결'을 찾아내는 탐험가(Explorer)가 되어야 한다. 같은 감정을 확인하고 다른 감정을 나눌 때 상대는 생(Life)을 또는 특정 과제(Project)를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어 준다.


이 사소한 차이로 나에게 '특권'을 내어주는 동지들이 생의 전반에 걸쳐 여기저기 생겨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는 사실 확인이 아니라, '나도 느꼈다'는 감정의 진동을 꺼내어 상대와 나누는 순간, 그 파동은 서로의 세계를 연결하는 띠(대, 帶)가 된다. 진정한 공감대(共感帶)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띠를 따라 기꺼이 타인의 세계로 건너가고 상대를 나의 세계로 초대하는 용기 속에 관계가 깊어진다.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은 곧, 서로의 삶의 형식(Form of Life)으로 서로를 부르는 초대장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라고 원망하는 상대방에게
"차가 너무 막혔어." 라며 사실만 전달하지 말고,
"차가 너무 막혀서, 기다릴 네게 미안하고 빨리 오고 싶었어."라는
작은 공감의 언어를 부끄러움 없이 표현해보는 것이 좋겠다.
사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표현 못하고 있었다는 것,
내가 다 알고 있다.




꼼곰하게 정의해본 "공감대"란?

사실을 너머 감정을 진동하며 만드는 띠(帶).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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