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용(惡用) : 합리적 선택의 비극.

꼼곰하게 정의하는 악용(惡用)

by 꼼곰

단순한 송금 한 번을 하려는데 거쳐야 할 절차가 산더미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인증서를 찾고, 그것도 모자라 문자로 온 숫자까지 입력해야 한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다는데, 왜 갈수록 복잡하고 귀찮아질까?


이유는 단순하다. 그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규제는 이기적인 악용으로부터 나온다. 만약 아무도 남의 돈을 탐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밀번호조차 필요 없는 세상을 살았을 것이다. 우리가 카페 테이블에 스마트 폰을 올려놓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처럼 편리했을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다는 요순(堯舜) 시대의 일화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요임금은 자신의 정치가 백성들에게 잘 닿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허름한 차림으로 시찰을 나갔다. 그때 한 시골 마을에서 촌부가 부르는 노래, '격양가(擊壤歌)'를 듣게 된다.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네. 우물을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배불리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백성이 임금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임금의 힘이 필요 없다고 느낄 만큼 평온한 상태. 가장 완벽한 정치는 이처럼 공기 같아서, 그 존재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다른 걱정 없이 그저 해가 뜨면 질 때까지 성실하게 우물 파고 밭 가는 내 할 일에 집중하면 부족함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평화롭게만 흐르지 않았다. 도의가 사라지고 권모술수가 판치던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법가 사상을 앞세운 진나라가 등장했다. 진나라의 법은 가혹했다. 부역에 하루만 늦어도 목을 베거나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당시 백성들은 요순시대와 달리 임금의 이름과 법의 조항을 달달 외우고 살았을 것이다. 모르면 죽으니까. 그렇다고 가혹했던 진나라의 법을 원망할 수 있을까?


신뢰가 깨진 자리는 당연하게 규제가 들어선다. 그것이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최소한의 처방이니까. 사회의 선함으로 유지되던 시스템이 몇몇의 이기적인 악용으로 무너질 때, 공동체는 '처벌'과 '감시'라는 비용을 치르게 된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일부이고 비용은 공동책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처벌과 감시를 위해 들이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 보자. 얼마나 큰 기회비용인가. 당장 비행기를 타려면 내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악용은 단순히 규칙을 어기는 것을 넘어, 사회적 선의(善意)를 파괴하는 파렴치한 행위다. 현대 사회의 복지 제도를 보자.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만든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발각되는 순간, 여론은 싸늘하게 식는다. 결국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수많은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하거나, 아예 제도가 사라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이기심이 타인의 편리함과 존엄을 빼앗는 것이다.


악용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착각한다. 남들은 몰라서 안 하는 줄 안다. 규칙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을 능력이라 여긴다. 그것이 본인 지능의 한계인 것을 모른다. 그것은 그저 시야가 좁고 부도덕한 '미꾸라지 짓'에 불과하다. 맑았던 웅덩이는 모두가 살기 힘든 흙탕물이 된다. "하지 말라는 법 있어?"는 "하지 말라는 법"을 만든다.


임마누엘 칸트는 말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


쉽게 말해, 나의 행동이 모든 사람이 따르는 '법'이 되어도 세상이 멀쩡할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나의 이기심에는 항상 보편의 잣대를 대보아야 한다. 악용하는 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보편화되는 순간, 자신 또한 파멸한다는 것을 모른다.


'합리적 선택의 비극'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우리 마을이 너무 어두워 가로등을 설치할지 투표한다고 가정해 보자. 경우의 수는 네 가지다.


1. 나도 투표하고, 남들도 투표해서 가로등이 생긴다. (비용 발생, 혜택 발생)

2. 나는 투표하고, 남들은 안 해서 가로등이 안 생긴다. (비용 발생, 혜택 없음)

3. 나는 투표 안 하고, 남들은 투표해서 가로등이 생긴다. (비용 없음, 혜택 발생)

4. 나도 안 하고, 남들도 안 해서 가로등이 안 생긴다. (비용 없음, 혜택 없음)


나 개인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합리적 선택'은 3번이다.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무임승차'다.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나처럼 자신의 이익만 계산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모두가 3번을 선택하여 4번으로 귀결된다. 가로등은 생기지 않고, 우리 모두는 위험한 밤길을 걸어야 한다. 이 비극이 회사로 확장되면 회사가 망하고, 나라로 확장되면 나라가 망한다.


가장 안전한 선택은 1번이다. 모두가 투표하는 수고(비용)를 기꺼이 지불하고 가로등이 생기는 혜택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투표를 못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을 이해해 주거나, 투표장에 가기 힘든 사람을 도와 투표장으로 함께 가는 것이 바로 사회적 '관용'이다.


하지만 이 관용 또한, 악용하는 사람이 생기면 깨질 것이다. 결국 투표하지 않은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길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강력한 규제가 생길 것이다. 이는 반드시 규제를 위한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낳는다.


헛똑똑 한 개인의 합리성이 집단의 비합리성을 낳고, 비극이 되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길을 걸을 때 내 발이 닿는 면적은 고작 한 뼘 남짓이다. 그렇다고 딱 그만큼의 땅만 있고 나머지는 낭떠러지인 길을 맘 편히 걸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내가 밟지 않는 땅도 내가 걷기 위해 필요한 땅인 것이다.


사회적 성공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아니, 오직 그 이유만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사회의 선의가 있었기에 그 위에서 내 노력과 내 장점이 성공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아름다운 공동체 안에서 지속되는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다면,

나부터 헛똑똑함을 버리고 내가 밟지 않는 땅(타인의 권리와 선의)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결국 나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이 불편한 규제의 숲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신뢰의 평원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꼼곰하게 정의해 본 "악용"이란?

사회의 선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파렴치한 행위.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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