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곰하게 정의하는 거래(去來)
인생은 끊임없는 거래의 연속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거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래는 주로 '돈'을 매개로 하기에, 우리는 거래라고 하면 차가운 계산기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돈이 오가지 않는 곳에서도 거래는 일어난다.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것, 남녀가 사랑을 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서로의 시간과 감정을 교환하는 '거래'다. 이 거래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돈을 잃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바로 '사람'이다.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이런 조언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있다. "너보다 나은 친구를 사귀어라."
이 말이 참 이상했다. 합리적인 인간은 손해 보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 만약 모두가 자기보다 나은 사람만 찾는다면, 그 '나은 사람'은 나를 만나주지 않을 것이다. 나랑 친구가 되는 건 그들에게 손해니까. 논리적으로 따지면 세상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수많은 우정과 사랑이 존재한다. 도대체 이 거래는 어떻게 성사되는 것일까?
힌트는 거래의 초기 형태인 '물물교환'에 있다. 물고기가 넘쳐나는 어촌 마을과 곡식이 넘쳐나는 농촌 마을을 상상해 보자. 어촌 사람에게 물고기는 흔해 빠진 식량이지만, 쌀은 귀하다. 반대로 농촌 사람에게 쌀은 흔하지만, 생선은 귀한 별미다. 두 사람이 만나 물고기와 쌀을 맞바꿀 때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다. 오히려 둘 다 자신이 가진 것(잉여)을 주고, 자신에게 없는 것(결핍)을 채웠기에 둘 다 이득을 본다.
이것이 좋은 거래의 본질이다. 거래는 우열을 가리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교환하는 수평적 관계다. "나보다 나은 친구"라는 말은 틀렸다. "나와 다른 친구를 사귀어라"가 맞는 말 같다. 내가 가진 꼼꼼함으로 친구의 덤벙거림을 챙겨주고, 친구의 대범함으로 나의 소심함을 채워주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 줄 수 있으니까. 물론, 동질감을 느끼는 친구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공감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어른들이 한 말은 아마 이런 발전적인 관계를 염두에 둔 조언이었을 것이다. 좋은 거래는 이렇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거래는 가치를 교환하는 것이다. 여기서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들인 비용(Cost)이 아닌 내가 만든 가치(Value)를 거래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내가 들인 '비용'을 '가치'로 오해한다. 회사의 가치를 설명하는데 자신이 이 회사를 세우고 운영하는 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부터 말하는 사장님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보자. 여기, 자신의 농장을 홍보하는 A와 B가 있다.
A: "이 고기는 제가 새벽부터 일어나 비싼 사료를 먹이고,
넓은 공간에서 키우려고 투자도 많이 했습니다.
좋은 고기를 팔려고 열심히 청소하고 관리했습니다."
B: "이 고기는 제시간에 좋은 사료를 먹어 맛이 고소하고,
넓은 공간에서 키워 활동량이 많아, 육질이 쫄깃하여 씹는 맛이 좋습니다.
철저한 위생관리로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A의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어우, 고생 많으셨네요." 반면, B의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하게 된다. "한 근에 얼마예요? 주세요."
소비자는 생산자의 땀과 눈물(비용)을 사러 온 게 아니다. 생산자의 노력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구매의 이유는 될 수 없다. 역지사지 하자, 소비자의 돈도 땀과 눈물로 번 것이다. 그 돈을 대가로 내 입에 들어올 고기의 맛과 효용(가치)을 사러 온 것이지, 내 노력을 사러 온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내세워야 하는 것은 가치다. 비용은 가치를 높여 가격에 녹이는 것이지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 냉정한 경제 원리는 인간관계에도 똑같이 통용된다. 생각만 해도 안타깝고 애절한 짝사랑을 예로 들어 보자.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싶은 사람은 흔히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기다렸는데", "내가 너 주려고 얼마나 고생해서 준비했는데"라며 자신의 '노력(Cost)'을 어필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것은 당신의 비용이지 상대방이 느끼는 가치가 아니다. 돌아오는 반응은 사랑이 아니라 '부담'이나 '미안함'뿐이다. 행여, 그 상태에서 관계가 발전한다고 해도 그 형태는 사랑이 아니라 '만나 주는 것'이 되고 만다.
내 노력을 상대방을 위해 무작정 기다리고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높이는 데 써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어필해야 하는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나의 가치다. "1년 넘게 너를 바라보며 기다렸어"보다는, "1년 넘게 너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이렇게 발전했어"가 먹히는 말이다.
숭고한 사랑 앞에 이런 세속적인 분석이 왠지 불경해 보이거나, 냉정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해 보자.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시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이 속상한 마음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Cost)"라고 하실 때, 당신은 부모님의 말씀을 감동으로 받아들였나? 죄송해서 좀 듣는 시늉은 했을지언정, 마음이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다. 나의 비용(Cost)을 내세워서 상대방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죄송함' 혹은 '미안함'이다. 상대방은 감화되지 않는다.
면접도 마찬가지다. "저는 밤새워 공부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라는 호소는 A 판매원의 멘트와 같다. 면접관은 당신의 고생담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당신을 채용했을 때 회사가 얻을 '이익(Value)'이 궁금할 뿐이다.
회사는 하해(河海)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일자리를 내려 주는 것이 아니다. 면접관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비용을 어필하지 말라는 소리다. 그 자리는 테이블 위에 나의 양질의 노동력을 내놓고 회사는 급여라는 조건을 내놓고 서로 거래를 결정하는 자리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회사의 니즈를 바탕으로 나의 노동력의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상세히 이야기하겠다.)
제대로 된 거래를 하고 싶다면, 나의 노력을 전시할 게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Needs)를 봐야 한다. 상대방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위로인지, 조언인지, 아니면 그저 함께 웃어줄 사람인지 파악해야 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상대방에게 '귀한 것'일 때, 비로소 나의 노력은 가치로 변환된다. 다이소에서 파는 2천 원짜리 물건을 내가 직접 만들려면 몇만 원이 든다. 이렇듯, 내가 가진 사소한 재능이나 배려가 상대방에게는 구할 수 없는 보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계산적인 사람을 싫어한다. 하지만 우선은, 철저히 계산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손해를 감수하고 내어 줄 수 있는 양을 파악하고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 즉, 나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서다.
이런 결론으로 도달하는 것이 내가 계속 단어의 의미를 분석하고 정의하는 이유이다. 냉철하게 분석하고 정의해야 명확한 방법이 보이고, 그 위에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묵직하고 따뜻하게 내 주변을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잉여로 당신의 결핍을 채우고, 당신의 잉여로 나의 결핍을 채우는 것. 그리하여 헤어질 때 "오늘 참 좋았다"라고 둘 다 웃으며 돌아서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거래이자, 가장 아름다운 관계의 모습이다.
서로의 다름을 교환하여, 참여자 모두가 손해 없이 이득을 보는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