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고집을 얻고, 낯가림을 잃다

by 초봉

이제 녀석이 세상에 빛을 본 것도 10개월이 지났다. 녀석이 태어난 이후 매월 특별한 변화가 있었고, 이번 달에도 녀석은 손을 짚고 일어나고, 일어선 채로 5초 이상을 버티는 등의 특별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녀석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이전에는 없던 고집이 생겼다는 점이고, 어딜가든 사람들을 겁내했던 예전과 달리 낯가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녀석은 태어나서 특별히 고집을 부린 적이 없다. 굳이 꼽자면 100일이 갓 지났을 무렵 녀석이 잠버릇에 고집을 부렸다. 아내는 매일 녀석을 안고 있느라 허리가 아픈 상태였는데, 눕지 않고서는 녀석이 잠들지 않으니 그날도 녀석을 안고 잠을 재우려 하고 있었다. 그런 아내가 너무 딱해보여 아내를 거실에 두고, 녀석을 데리고 방에 들어왔다. 졸려서 계속 눈물을 흘리는 녀석을 안아주지 않고 계속 쳐다보기를 20분. 녀석은 지쳤는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 정도가 녀석이 부린 고집의 전부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아내와 조리원에 같이 있었던 조리원 동기(?)들이 애기들을 데리고 집으로 놀러왔던 적이 있었다. 녀석을 제외한 어린 친구들은 모두 같은 문화센터를 다니고 있었기에 서로 조금의 안면은 있었고, 자기주장을 어느 정도 펼수도 있었던 것 같다. 녀석이 자신의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와서 녀석의 장난감을 뺏는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장난감을 뺏기고도 별다른 반응없이 다른 장난감을 찾았고, 뺏기면 또 다른 장난감을 찾았다. 그런 녀석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변했다. 이제 고집이라는 것이 생겼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못하게 하면 '으으~~으으~~'소리를 내며 계속 하기를 희망했고, 자신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은 도리질을 치고,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이 보이면 밀가루 반죽같은 두 팔로 식탁을 내리쳤다. 녀석의 고집에 지쳐 엄마, 아빠가 내버려두면 어딘가를 짚고 장난을 치다 넘어지기 일쑤다.

반면, 녀석은 낯선 사람만 보면 고개를 돌리고 울던 그 때를 잊어버린 모양이다. 요즘은 처음보는 사람을 봐도 울지 않고 익숙해지려는 듯 계속 쳐다보고, 심지어 웃어주기도 한다. 녀석의 태도가 가장 극적으로 변한 것은 녀석의 외삼촌과 자주가는 병원의 의사선생님이었다.

녀석의 외삼촌은 녀석이 엄마의 배에 있을 때 부터 녀석을 부지런히 괴롭혔다. 녀석이 배에 있을 때부터 각종 협박(?)을 했고, 아내에 배를 통통 쳐 괴롭혔던 외삼촌이었다. 그런 외삼촌을 기억하는 듯 녀석은 외삼촌을 만나기만 하면 대성통곡을 했다. 심지어 외삼촌의 결혼을 앞둔 상견례 자리에서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울기 시작해 결국 음식 하나 먹지 못하고 식당을 나와야만했다. 그런 녀석이 최근에는 외삼촌에게 미소를 보이고 손을 뻗어 외삼촌에게 안기려고 했다. 또, 극한의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만 내어 주는 자신의 손을 외삼촌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최근에 결혼한 외삼촌은 '아기'를 갖고싶어 하는 것 같다.

의사선생님에 대한 태도도 확연히 변했다. 녀석의 모든 예방접종을 책임졌기에 녀석은 '의사선생님 = 아프다'로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의사선생님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해서, 진료실에서 나올 때까지 대성통곡을 해서 의사선생님을 무안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녀석의 코감기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녀석은 자신의 배와 등을 비롯해 귀와 코, 입을 보는 의사선생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진료가 끝날 때는 '씨익' 웃으며 진료실을 나오고 있었다. 녀석은 코감기로 고생을 조금 했으나 녀석과 의사선생님, 아빠, 엄마가 모두 행복한 진료였다.

우리 육아 방식대로 녀석의 고집이 늘어나기 시작할 무렵 여기저기 찾아보니 10개월 차가 되면 자연스럽게 고집과 주장이 생긴다고 한다. 고집이 생겨서 엄청 신경쓰이는 것도, 낯가림이 없어졌다고 엄청 기쁜것도 아니다. 그저 '녀석이 그렇게 변하는 구나'라고 받아들이고, 다만 과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2. 50대 50, 그즈음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