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먹는 것의 경계가 사라지다

by 초봉

녀석이 아내의 뱃속에 있을 때도, 녀석이 세상에 나왔을 때도 나는 평소에 먹던 것들을 계속 먹었다. 아내는 입덧을 할 때도 내가 먹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았으며, 녀석이 어느 정도 앉을 수 있을 때에는 녀석을 내 무릎 위에 앉히고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라도 잘먹고 힘을 내서 딴 것들을 도와주자'라는 생각이었다.

반면, 아내는 지겹도록 한가지만 먹었다. 아내는 녀석이 뱃속에 있을 때는 회를 비롯한 날 것을 먹지 않더니, 녀석이 세상에 나온 이후 100일 동안 미역국만 먹었다(그 이후 200일이 더 지났으나 우리는 아직 미역국을 먹지 않고 있다ㅎ). 그리고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날 것과 술을 먹지 않더니 모유를 딱 끊던 그날 회에 소주를 마셨다.

녀석도 태어나서 얼마 동안은 지겹도록 우유만 먹었다. 엄마들은 모유와 분유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빠들이 봤을 때는 모유나 분유는 우유의 범주에 들어가는 비슷한 음식이다. 녀석은 태어나고 이유식을 하기 전까지 지겹도록 우유만 먹었다. 심지어 갓난 아기때는 물도 먹지 않는 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다.

녀석의 첫 음식, 이유식은 미음이었던 것 같다. 그 허여멀건 미음을 입으로 넣을 때 녀석은 낯선 식감에 많이 어색해했고, 처음 앉아서 먹었기에 입으로 많이 흘리기도 했다. 그런 녀석을 달래가며, 여러가지 장비를 바꿔가며 이유식을 하려는 아내의 노력 또한 대단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양이 늘고, 횟수가 늘고, 이유식에 들어가는 종류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큰맘먹고 호주산 소고기로 샤브샤브를 해먹었지만, 녀석은 늘 최고급 한우가 듬뿍 들어간 이유식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의 먹는 것에 경계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신생아용 과자로 시작했었는데, 어느새 녀석의 손에는 죠리퐁이 들려있었다. 과즙망에 조금씩 넣어주던 사과도 포도껍질과 씨까지 삼키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된장국을 끓이면 두부 몇개는 깨끗이 씻어 녀석의 입에 넣어주어야 했고, 닭백숙을 하면 녀석이 먹을 것을 생각해 한약재는 넣지 않았다. 그렇게 녀석의 먹는 경계는 사라졌다.

덕분에 이제는 가족식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식사시간도 발전을 했다. 아내와 나는 밥을 먹고 녀석도 의자에 앉혀 과일이나 각종 음식을 준다. 때로는 포크로 찍어주기도 하고,가락을 입에 넣어주기도 하며, 음식에 따라서는 녀석이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기도 한다. 이러다 점점 녀석은 포크에 익숙해지고, 숫가락을 들고 밥을 먹다, 젓가락질 연습을 하겠지. 녀석이 커가며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은 좋지만 과거에 미숙했기에 더욱 조마조마하게 보던 행동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다. 이래서 '그만컸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오늘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로 잡채를 해먹을 예정인데, 과연 녀석도 먹게될까?

녀석이 처음 포도를 접한 그날을 너무 인상깊게 본 녀석의 외숙모가 만든 영상을 올려본다. 악의적으로 사용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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