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아기는 세상을 웃게 한다

by 초봉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 모임에 아기를 데려오면 불평을 내뱉기 일쑤였고, 따스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술을 먹기 바빴다. 몇 년 전 조카가 태어났을 당시에도 크게 기쁘하지 않았으며, 녀석이 태어나기 전에는 그 조카를 안아주기는 커녕 따스하게 한 번 불러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기는 나에게는 귀찮고, 성가신 그런 존재였다. 녀석이 태어나기까지.

녀석이 태어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의 특성상 손님들이 아이와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아이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이뻐보인다. '저 정도 크기에 신발은 안신고 있으니 걷지 못하면 녀석과 비슷한가?', '녀석은 언제 저 애처럼 커서 걸어 다니려나' 등 생각을 하기도 하고, 녀석과 같은 장난감을 가진 아이를 보면 그 또한 너무 반갑다. 소위 말하는 '아빠미소'를 내가 짓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폭염이 있기 전까지 우리부부는 녀석을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많이 했다. 그 산책 코스는 인적이 드문 동네 골목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꽤나 있는 상가나 마트, 도서관도 있었다. 초기에 낯을 가릴 때 녀석은 힘이 없는 것처럼 유모차에 기대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몸을 가눌 정도가 되자 유모차의 봉을 두손으로 잡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채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길거리에서 우리 가족을 지나치는 행인에게서 묘한 미소가 느껴졌다. 그 미소는 녀석과 특정 장소에 머무를 때는 더욱 커졌다. 예를 들면 마트 같은 곳 말이다. 자주 들르는 마트 정육코너에 가면 녀석은 스타다. "저 10개월 밖에 안된 애가 어떻게 저렇게 이목구비가 뚜렸하데", "이 더운데도 표정봐, 웃었다 웃었어" 등등 다들 녀석을 반겨주시고, 계산대에 계신 분들이 녀석을 보느라 계산이 조금 지연되기도 한다.

어제 저녁에는 책을 빌릴 일이 있어 녀석을 데리고 도서관을 갔다. 우리동네 도서관은 특이하게 책을 빌리는 곳 중간중간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녀석이 떠들기라도 하면 책을 빌리지도 못하고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이 녀석이 조용히 해주었기에 나는 책을 빌릴 수 있었고 유모차를 돌려 나오려고 했다. 그때, 내 또래의 여성분이 한창 공부를 하다 녀석을 보시고는 '빙긋' 웃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의 존재 자체가 우리부부와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사람들에게 이렇게 즐거움을 줄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다니며 성선설, 성악설 등을 배웠다. 나는 성선설을 믿는 편이었는데, 녀석을 보고는 조금 더 성선설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그것지 않더라도, 녀석과 녀석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저런 얼굴에 어떻게 악이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녀석과 녀석 또래의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나가다 요렇게 생긴 아이가 보이면 한번 씨익 웃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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