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가 최고야'라는 책이다. 책에서 아빠는 늑대도 안무서워하고, 달도 뛰어넘을 수 있고, 달리기도 잘하며, 물고기처럼 헤엄도 잘치는 것으로 묘사가 되어있다. 아마 아이들의 시각으로 본 아빠를 묘사한 책인 것 같은데, 녀석이 그 책을 보고 있으면 나는 '내가 슈퍼맨이 되어가고 있는 건가?'라는 물음이 생긴다.
슈퍼맨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몇 차례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랐던 순간이 있다.
애기를 데리고 어디를 다녀오면 짐이 정말 많다. 간단하게 싸서 다녀올수도 있지만 낯설은 환경에 녀석이 어색해할까봐 평소 녀석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책, 의자 등을 싸서 다니기 때문에 짐이 많다('녀석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좋은 명분을 달았지만, 사실 부모가 조금 더 편하려고 짐을 많기 가져다니는 것 같다). 그렇게 어디를 다녀온 후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들어오면 내 손에 급격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녀석의 각종 짐과 여기저기서 챙겨주신 물건들, 평소 나라면 2번은 왔다갔다 했어야 할 양이 내 양손에 들려있다.
어떤 날은 와이프가 외출을 한 상황이라 한 손으로는 녀석을 안고, 한 손으로는 짐을 챙겨 차로 가고 있었다. 녀석이 꽤나 커 무거웠지만 '단 1%도 녀석을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녀석이
마치 내 팔인 것처럼,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아프고 저려도 버텨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에서도 술을 한잔 마시기 시작하면 자는 것 이외에는 만사가 귀찮아지는 나였다. 하지만 술을 먹다가도 녀석이 대변을 보면 와이프와 녀석을 씻기도, 낮에 녀석이 조금씩 뜯어놓은 책장 필름을 더이상 뜯지 못하도록 테이프를 이리저리 감고 있었다. 내 스스로도 놀랄만한 행동이었다. 그럴 때 내가 어떻게 느끼고, 어떤 기분인지는 설명을 하기가 참 어려운데 문득 과거에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벼랑 끝에선 사람에게 누군가 말했다.
"저기 외줄이 있고, 외줄의 반대편에는 10억이 있소"
대부분의 사람들은 10억이라는 큰 금액에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외줄이 너무 위험한 것을 깨닫고 포기를 했다.
그 누군가가 다시 말했다.
"저기 외줄이 있고, 외줄의 반대편에는 당신들의 자식이 있소"
모든 사람들은 외줄을 타려고 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아빠들은 많은 경우 약한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다소 위험하더라도 약한 아내와 아이가 다치거나 어떻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맞서는 것이 낫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빠라고 두렵거나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물러나면 우리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다.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아빠는 슈퍼맨'처럼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늑대도 무서워하고, 물에 들어가면 1분도 버티지 못하는 나지만 녀석에게만은 슈퍼맨이 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아빠들의 공통된 마음이지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