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주 전관예우, 언제까지 해야하나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매우 불편한 것입니다.

by 초봉

『전관예우(前官禮遇)』


원래는 '판사나 검사로 재직하다가 변호사로 갓 개업한 사람이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특혜' 정도로 통용되고 있으나, 이 전관예우라는 것은 대기업 내에서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를 '정(情)'이라는 개념을 배제한 상태에서 논하기에는어려움이 있듯, 과거 나의 상사였던 사람에 대한 전관예우는 통념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되어 온 부분이다.

하지만, 그 전관예우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그 선을 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또한,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과를 창출하여 높은 자리(임원)를 꿈꾸는 사람들 중 일부가, 회사의 발전보다는 자신의 안위,더 나아가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받게 될 전관예우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은, 주변의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의욕을 꺾을 뿐 아니라 회사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 그 정도도 못해줘?』


맞다. 우리 사이가 그 정도도 못해 줄 사이는 아니다. 과거에는 나의 상사라 당연히 해주던 부분이지만,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는 우리와 거래하는 협력업체(밴더)의 대표의 위치가 된 이후에는 당연하게 해주던 그것을 지금은 해주기 어렵다. 그때 당신은 나의 상사였고, 지금 당신은 우리회사와 거래하는 대표다.


난감하다는 표현을 몇 차례 하지만, 그 대표는 지나칠 정도로 부탁을 한다. 과거에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지도 않고, 냉정하게 하던 그 모습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다. 한편으로 측은한 생각도 들지만, 참 빨리 자신이 처한 현실에 적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에는 규정이 있고, 나는 회사의 규정을 준수하기에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지속하면, 그 대표는 ‘너무 하네. 우리 사이에…’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냉정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기업은 위의 모습이 아닐까? 과거에는 상사였지만 지금은 거래처의 대표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술을 한잔사고,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는 모습. 하지만 과연 현재 우리 대기업은 그럴까?


『안되는 이유가 뭐야?』


나의 상사였다가 현재는 협력업체의 대표인 분의 부탁을 거절한지 채 3일도 되지 않아 담당 임원이 찾는다. 임원이 왜 찾을까 생각해보니 ‘그 대표와 임원은 입사동기였던(혹은 고향 친구) 것’이 생각난다. 규정을 설명하고, 가격을 비교해서 그 대표의 회사보다는 A사가 더 우수함을 임원에게 설명하지만, 임원은 A사의 조그마한 약점을 매우 심각한 것처럼 과장하여 결국은 동기였던 대표가 근무하는 회사와 거래하도록 지시한다.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한 후 며칠이 지난 뒤, 우연히 마주친 과거 상사였던 그 대표는 나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한다. 규정에 완전 어긋난 처리는 아니었지만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이 사례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내가 입사한 이래 우리 회사는 계속된 호황기를 겪어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던 일이었다. 이런 일은 결국 내 양심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 회사의 경쟁력을 낮추는 요인이며, 이로 인해 우리 회사 및 거래처가 더 장기적인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왜 그들은 알지 못하는지.

많은 대기업은 자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회사 대표는 대기업 퇴임 임원이 하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지고 있다. 현재 임원 은퇴나이에 있는 분들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많은 노력을 하신 분들이며, 그 분들의 노고는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대기업의 성장과정에서 그 분들은 많은 연봉을 받았을 것이고, 스톡옵션 등으로 많은 주식도 취득을 하셨을 것인데, 퇴임 이후까지 자회사 대표로 가서 조금 이라도 더 임기를 연장하려는 모습을 안타까워 하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리라. 주류에서 벗어난 모습이 조금은 안타깝게 보일지라도, 패기와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만 물러나 주시는 것이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 아님을 생각해본다.


『우리가 무서운 줄 알아야 당신에게 더 잘하지』


올해 개봉한 영화 '더킹'에 나오는 장면 중 인상깊은 장면이 있었다. 부장판사인 한강식(정우성)이과거 자신의 선배이자 검사장 출신인, 현재는 로펌에서 근무하며 사건을 청탁하러 온 문희구(정원중)를 야구 방망이로 때려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한강식은 "내가 이렇게 해야, 검찰이 더 무서워야, 로펌에서 당신 같은 사람들(검찰 출신)을 더 대접해주고 연봉도높게 주지 않냐?"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어떤 의미든 전관예우는 사라져야 하는 것이 옳다. 그 회사에서 수십년을 근무한 사람은 그 회사의 프로세스, 시스템, 규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편법을 쓰는 방법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대표를 맡은 자회사의 경쟁력을 키워 대기업과 윈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 소위 말하는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는 서로의 경쟁력을 후퇴시키는 길이다.(대기업에 근무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좋은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가장 불편한 것'이며, '규정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나도 전관예우를 전혀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단, 나의 행동으로 '회사가 발전이 아닌 후퇴를 한다'라는 생각이 들면 난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내 행동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회사를 망쳐가며 전관예우를 하는 태도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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