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대게잡이 배에 타게 되었는가
이번 해돋이는 조금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마지막 20대를 맞이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보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추운데 뭐하러 배를 타!’, ‘죽으려고 환장했구먼’, ‘그렇게 할 게 없을까…'
심지어 바닷가에서 만난 사람들도 타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은 게 우리다.
'하면 되겠지!, 과연 될까?'라는 두 가지 상반된 마음으로 저녁 6시경 묵호항에 도착했다.
12월 30일의 묵호항은 굉장히 썰렁했다.
아니 동해시 전체가 쌀쌀한 바람을 제외하고는 움직이는 것들을 보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해가 지는 시간이라 그런지 많은 배들이 항구로 돌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선원들이 우리를 태워줘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마음에 호소했다.
“서울에서 온 청년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지 않습니까?. 한번 태워주십쇼.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튼튼합니다.”
대부분의 반응은 굉장히 차가웠다.
그도 그럴 것이 생존을 위해 배를 타는 사람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경험을 위해 배를 타는 청년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방해만 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무모했고, 어쩌면 건방졌다.
하늘이 도왔는지 집으로 돌아가려는 한 선장님이 이야기 도중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아마 선장님은 '너희들이 진짜 오기는 하겠니?’라는 생각으로 말을 던지신 것 같다.
우리는 그 기회를 잡고 감사하다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우리가 탈 배는 ‘덕진호’인데 다음날 새벽 4시에 출항해 오후 2시에 돌아오는 대게잡이 배였다.
출항 전 준비해야 할 것은 특별히 없었다.
묵호항 경찰서에 가서 승선 등록을 하는 정도?
경찰서에 가서도 경찰 아저씨들은 우리에게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말렸다.
그래도 이미 저질러진 물을 어찌하겠는가.
죽으면 보험도 안된다는 무서운 말을 뒤로하고 우리는 승성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추운 날, 그것도 새벽 4시에 배를 타러 갈 수 있을까?
배를 탈 수 있는 기회는 덥석 물었으니 이제는 우리의 의지 문제다.
오만가지 변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감기 걸리면? 내일이 18년 마지막 날인데 차분히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이 우리의 발걸음을 휘청이게 만들었다.
재밌는 것이 둘 중 한 명이 걱정을 꺼내면 나머지 한 명이 '그래도 가자!’라고 소리 지르고 잠시 후에는 가자고 소리 지른 한 명이 걱정을 털어놓는 일이 반복되었다.
혹시 정말 진짜 타게 될 경우를 대비해 시뻘건 칠이 되어있는 흰 목장갑과 핫팩을 하나씩 샀다.
저녁 10시경 간단히 세안을 하고 자리에 누웠다.
3시 20분에는 일어나 정리를 하고 나가자며 약속을 하고 잠을 청했다.
잠이 들기 전까지도 우리는 서로에게 걱정을 던졌다.
그리고 서로가 알람을 놓쳐 아침까지 푹 자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