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백수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꼼마 May 09. 2020

퇴사일기 (별첨) : 퇴사 편지

스타트업 개발자의 퇴사 일기

안녕히 계세요.


 2년 반을 몸 담은 제 인생의 첫 직장, 아니 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전환기를 만들어준 회사인 만큼 충분히 고민하고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오래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정답이 있는 고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민을 시작한 지 2주가 되는 날, 팀장님께 퇴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광호입니다.


 2017년 10월, 방향 없는 열정만 가득했던 26살 기계공학과 학생이 메디블록에 인턴으로 입사했습니다. 개발 인턴이 아닌, 그냥 엑셀을 다루고, 숫자를 세는 잡무가 제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인턴 기간이 끝나고 대표님께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두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흔쾌히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라면 그럼 위험한 투자를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그렇게 2018년, 개발 공부를 시작했고 3월 즈음 메디블록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메디블록에 들어오기 이전에 개발자는 제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코드와 씨름하는 제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개발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인턴 기간 느꼈던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개발이라는 산을 정복해 보자!'라는 근거 없는 패기, 두 가지였습니다.


 2018년 3월, 개발을 시작하며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1년 동안 다른 선택지는 고민하지 말자', '후회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그리고 미칠 듯이 노력하자'.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저 자신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2019년 3월, 후회 없이 도전했지만, 아직 프로그래밍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와 1년을 재계약했습니다. 2020년 3월, 어느덧 한 사람 몫을 해내는 개발자가 되었습니다.


 제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개발 리더가 되기 위해 프로그래밍에 매진하거나 회사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었기에 제가 존경하는 리처드 브랜슨, 손정의 두 분에게 여쭤보았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그분들의 대답은 명쾌했고 저는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왜 지금 떠나는가


 사실 퇴사 이후에 무엇을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부모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퇴사를 만류했습니다. 전례 없는 경제 위기 속에 아무런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눈앞에 불구덩이가 뻔히 보이는 데도 맨몸으로 달려드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곧바로 퇴사 시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퇴사 시기에 대한 장단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쌓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신뢰'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퇴사 시점을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인수인계를 마무리하는 시점으로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누구보다 메디블록, 그리고 동료들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초기 멤버의 입장에서, 그리고 구성원의 입장에서 그동안 생각하고 느낀 것이니만큼 여러분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프로입니다.


 제가 메디블록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고, 가장 두고 가기 어려웠던 것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함께하는 '동료'입니다. 세계적 자기 계발 강사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수리가 되려면 독수리 떼와 함께 날아라. 함께 살고 일하고 교제할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만큼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없다.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고 숭배하는 사람들하고만 교제하라.' 우리가 독수리 떼가 되기 위해, 그리고 독수리 떼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프로를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프로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또 우리 구성원이 곱씹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로는 대안 없는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개선합니다.  


 불만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만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건설적인 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안 없는 불만은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프로는 대안 없는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대안을 제시하고,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를 믿고 나아갑니다. 대안 없는 불평만 가득한 조직은 뿌리가 썩은 나무와 다름없습니다.


 불평불만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대안 없는 불평은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속에서 누군가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문제 해결보다는 본인의 존재감에 더 비중을 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지 서로를 자랑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

 

 조직이 커지며 대안 없는 불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불만은 우리 회사를 조금씩 갉아먹을 것입니다. 불만이 있으면 드러내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불만을 해결할 대안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거나 떠나야 합니다. (사실, 문제 개선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신뢰'입니다. 상호 간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아무리 대안을 제시하더라도 받아들여지기는 힘듭니다.)



프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프로는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긍정적인 태도만이 동료들이 함께 멀리 갈 수 있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혼자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목표를 장기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영향력 없이는 멀리, 함께 가기 어렵습니다. 부정적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냉동 창고에 갇혀버린 한 남자가 있다. 냉동 창고에서 작업하다 문을 열어두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곧이어 절망에 빠지고 얼어 죽는다. 같이 일하는 작업장 사람들은 남자를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냉동 창고에 전원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냉동 창고 이야기는 이 노시보 효과의 사례 중 하나입니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는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결코 위대한 기업을 세울 수 없다. 부정적인 사람의 말을 듣고 큰일을 성취한 사람도 없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부정적인 사람은 빠르게 제거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로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프로는 열심히 일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프로는 열심히 일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회사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는 것은 그리 와 닿지도 않고 동기부여도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좀 더 본인에게 초점을 맞춰 생각해야 합니다.


 '동기부여의 힘'이라는 책에서는 동기를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내재적 동기와 외부 보상을 통한 참여인 외재적 동기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그리고 외재적 동기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에는 효과가 있지만, 창조적인 일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내재적 동기가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회사가 구성원의 동기 부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스스로에 맞는 동기를 찾고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은 구성원 개개인의 숙제입니다. 갑론을박이 있지만 '연봉'이라는 외재적 동기는 마치 마약처럼 즉각적인 효과를 낳지만, 장기적인 성장에는 부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떠나는 발걸음이 이리도 무거운 것은 제가 가진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디블록의 두 대표님과 차민규 팀장님 그리고 동료들, 동료로서 누릴 수많은 기회와 믿음. 이 귀중한 것들은 절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메디블록,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한 시간 동안 신뢰, 열정, 감사함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이광호는 2년 반 전의 이광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무한한 애정과 신뢰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직, 간접적으로 함께한 모든 동료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모르던 저를 믿어주시고 기회를 주신 고우균, 이은솔 두 대표님과 영원한 저의 리더인 차민규 팀장님. 그동안 저 때문에 고민도 많고 힘드셨을 텐데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성장하고 떠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일기 D-0 : 떠나는 자의 뒷모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