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모델 데뷔?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안녕하세요. 이번엔 모델 데뷔 썰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지난주 오후 4시경 선릉역 부근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저기요’ 하면서 뛰어오는 거예요. 사실 처음에는 저를 부른다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제 어깨를 툭툭 치며 ‘저기요’ 하더라고요.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요새 운동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건가?’, ‘도를 아십니까?’, ‘신종 사기인가?’ 등등의 생각이 들었죠.
“안녕하세요. 저는 뷰티/헬스 아카데미 대표 OOO인데요. 혹시 뷰티/헬스 쪽에 관심 있으세요?”
“아뇨. 없는데요...? 운동하는 것 말고는 딱히 관심은 없어요.”
“아 그래도 이야기 한번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걸어가시는 것을 봤는데 이미지가 딱 저희가 찾고 있는 분이라서요.”
“아... 네... 감사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뷰티/헬스 모델로 저희와 함께 해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앗! 그렇다. 이것은 모델 캐스팅이었던 것이다! 사실 요새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해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델이 된 제 모습을 상상하며 자꾸만 솟아오르려는 광대를 숨기기에 급급했죠.
그래 이제 모델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거야!!
깊은 고민을 하는 것처럼 조금 뜸을 들인 후 시크하게 이야기했죠.
‘네 그럼 일단 대표님 회사 정보를 보내주시면 고민해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제 번호를 그분에게 드리고 저희는 헤어졌어요.
그리고 그날 밤 카톡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아 이때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정말 저를 모델로 섭외하려고 했다면 정확한 회사 정보와 명함 등등을 보내줬을 텐데 말이죠. 아무튼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저는 저 카톡을 보고 ‘아 뭐야. 나 이제 성훈이랑 같이 일하는 건가? 훗.‘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죠. 아무튼 그렇게 오프라인 미팅 날짜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뭔가 조금 께름칙했어요.
‘보통은 회사 홈페이지를 보내주지 않나?’
그래서 미팅 전에 준비를 하고 싶다고 회사 홈페이지를 공유해달라고 요구했죠. 그러자 상대방은 왠 유튜브 영상과 기사 하나를 보내주며 ‘미팅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내준 영상과 기사를 살펴보니 회사 이름이 ‘뉴스킨(Nu Skin)‘이었어요. 이 회사가 무슨 회사인고 하니 쉽게 말해 화장품 다단계 회사...
그렇습니다. 다단계 회사의 영업에서 저는 멍청하게도 모델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었죠.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창피하네요...)
아무튼 이래나 저래나 이야기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미팅 장소로 나갔습니다. 혹시 모르죠. 정말 저를 모델로 고용하려는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약속 장소인 선릉역 앞에 있는 카페로 향했습니다. 제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선릉역 근처에서 제 번호를 따간 여자분과 또 다른 여성분 한분이 오셔서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리고는 한 시간가량 뉴스킨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더라고요.
뭐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며 결국 아무 일 없이 헤어졌어요. 헤어지며 들었던 생각이 ‘어? 이거 꽤나 재밌잖아? 자존감도 떨어지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사회성도 길러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면 재밌겠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분들은 저를 어떻게든 구슬려 본인들의 그룹에 넣으려고 하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요리저리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거든요.
기대했던 반전은 없었지만 꽤나 재미있었어요. 그분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설득하려 하는지도 배웠고, 또 다단계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지 구체적으로 배웠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네트워크 마케팅은 정말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문제가 되는 것은 ‘탐욕에 눈이 먼 개인’과 ‘좋지 않은 제품’ 일뿐이지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이성적으로 공급한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구조니까요.
결국 제 모델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네요. 다음부터는 절대 헛된 꿈을 안고 흥분하지 않을 테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