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숙소로 돌아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각보다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감기는 점점 심해져서 목이 아프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콧물은 질질 흐르고, 기침은 계속 나온다.
침대에 누워서 푹 쉬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멍청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순간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같이 미국에 온 사람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우연히 한 재즈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식사를 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꽤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번엔 정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런 스테이크를 먹어보고 싶어서 웨이터에게 정말정말정말 살짝 익힌 고기를 달라고 했다.
나는 '레어'가 가장 덜 익힌 상태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한 단계 아래로 '블루' 단계가 있다고 한다.
레어보다 덜 익히고, 날것보다는 살짝 익혀진 것이라고 했다.
바로 도전!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종이로 된 식탁보에 기록을 남겼다.
뭔가 아쉽다.
사실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을 나눠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나와는 다른 영역의 사람이어야 하고, 좀 더 차분하고, 침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어야 나는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 과거를 되돌아보면 이 결과가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연하게 시작한 생각으로부터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음식이 나와서 식사를 시작했다.
솔직히 레어보다 덜 익힌 블루 단계의 스테이크를 시키며 많은 기대를 했다.
'드디어 내가 생각하는 피 뚝뚝 스테이크를 먹어보는구나!'
하지만 맛은 최악이었다.
겉은 탔고, 속은 차가웠다.
소스는 지나치게 짰고, 야채, 감자튀김도 너무나도 달고 짰다.
어떻게 이런 음식을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지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아마 '재즈'공연이 있기 때문에 그런가?
그럼 가격을 더 올리고 음식을 제대로 하든지!
주변 가게들은 북적북적이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것에 비해 이 가게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동료들도 굉장히 불쾌해했다. 대부분의 음식이 차거나 너무 짜고 달았다.
이런 음식을 제공받고도 팁을 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팁을 주고 싶지 않아도 계산서에 이미 쓰여 있는데 어떻게 하나...
서비스는 친절하지만 음식 자체의 질이 굉장히 낮다.
식당의 본질이 무엇인가?
음식인가? 서비스인가?
본질을 찾지 못하는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
방으로 돌아와 룸메 형님께서 친히 하사해주신 샴페인을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형님도 참 대단하다.
미국에 온 기회를 최대한 많이 살리기 위해 무겁고 고가의 장비를 한국에서 직접 가져오셨다.
또 미국에 와서 혼자 돌아다니며 비즈니스를 하고 계신다.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