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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Sep 03. 2018

스웨덴에서 느낀 것: 멘탈편

스톡홀름살이 3

30th August 2018


스웨덴에서의 하루

요즘 나의 생활은 보통 이렇다.

06:00 일어나서 운동가기

09:00 회사 출근해서 아침 먹기

~ 회사에 있는 시간 ~

17:30~18:00 퇴근

19:00 필요한걸 사거나 산책하고 집 도착

~ 집에서 노는 시간 ~

22:00 침대에 누워서 놀다가 잠


평일 아침에 세 번 정도 아침에 운동을 하고, 일하고, 퇴근 후 책을 보고 핸드폰 게임을 하고 12시 전에 잠든다. 주말에는 역시 운동을 하고 스톡홀름의 안 가본 곳을 한 군데 정도 구경하고 일찌감치 들어와 역시 일찍 잔다. 스웨덴에 산다고 딱히 매주마다 특별한 것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원래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할뿐더러 여기에서도 역시 저녁이면 내일 출근할 생각, 주말이면 다음 주 출근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처음 살아보는 나라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시간이 될 때마다 발이 닫는 대로 걸으면서 괜찮은 카페를 발견하는 것, 야경을 보는 것, 필요한 생필품이나 옷을 사는 것, 새로 만난 식구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나는 다른 사람들과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등이 5년째 하는 출퇴근을 조금 다르게 보이게 한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가장 원했던 것은 사실 커리어 업그레이드였지만 막상 지금은 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를 느낀다.


한량 같은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보다 훨씬 안정된 상태인 것 같다. 처음에 인터뷰 보러 처음 왔을 때 같이 점심을 먹어주러 온 사람에게 스톡홀름에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한 명이 'calm'이라고 대답했었는데 아직 더 정확한 단어는 찾지 못했다. 스톡홀름은 수도지만 사람이 많지 않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도시이고 회사 분위기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 단거리를 뛰다가 갑자기 걷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끔 받는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많아진 나는 지난 몇 년을 찬찬히 되짚어보면서 일기나 블로그를 쓰고 대부분의 시간에 한국과 스웨덴에서의 회사 생활을 비교한다. 


회사에서 배워온 것

나쁜 것은 종류를 막론하고 쉽게 물드는 것 같다. 그래서 적어도 주변 환경이나 내가 소비하는 것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중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사람과 문화로부터 받는 영향이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담배나 커피 같은 물체와는 구체적인 인식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침에 커피를 꼭 마시는데 이 루틴을 끊기 힘든 것을 포함하여 커피가 주는 신체적 영향은 꽤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나 문화는 어느새 스며들고 특히 나쁜 것은 더 빨리 확실하게 나를 바꾼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나쁜 것에는 참 쉽게 물이 든다. 우리나라 회사는 개인에게 할당된 일이 많고 일정이 일방적으로 타이트할 때가 많다. 미친 일정과 야근은 모두가 재앙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조금 다르다. 나의 경험을 돌아보면, 빡빡한 업무는 주기적으로 왔고 재앙을 몇 번 소화하고 나면 그 사이클에 스며들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재앙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성장의 하나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잘 설명하기 힘든 복합적인 감정이지만, 재앙이 끝나고 돌이켜보면서 '많이 배웠다'라고 스스로 만족하던 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냉정히 말해서 아무나 그 정도로 코딩을 했으면 무엇이라도 당연히 배웠을 것이다. 회사에 항의하고 매니저와 싸우거나 다 버리고 해외 이직을 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회사에 물들고 있는 순간에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일처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새 회사는 나에게 어떤 차이를 보여주는가?


급하지 않게 일하기

일은 스톡홀름이 나한테 주는 느낌과 대체로 비슷하다. 예전에 나를 몰아붙이고 때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은 적어도 지금 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진리의 팀바팀'은 여기도 존재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퀄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차근차근 나아가는 스타일의 팀에서 일하고 있다. 참고로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사내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플랫폼을 개발했고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한다.

하루에 할 일은 넘치지 않게 팀원들과 나누고, 일정은 내부에서 정한다. 나는 입사하고 3주 정도부터 간단한 이슈부터 수정하기 시작했는데 시니어 중 한 명이 '꽤 빠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력을 채용하고 얼마나 기대치가 낮은지 볼 수 있다.

기대치가 낮다는 것은 내 경험에 근거해서 확실히 알 수 있다. 매년 신입 개발자들 한 두 명이 우리 팀에 들어왔는데 리더 중의 한 명이 누가 제일 처음 커밋을 하는지 비교하는 것을 보았다. 팀에 신입이 한 명이면 몇 개의 팀이 묶여있는 상위 조직의 다른 신입과 비교했다. 그들의 첫 커밋은 나보다 훨씬 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일 처음 커밋한 당사자는 기분이 좋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과연 의미 있는 비교인지 아직도 의문이며, 이런 언급 하나하나가 조직의 문화를 슬며시 틀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치열하지 않게 일하기

치열함이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면, 미치게 치열함은 여기에 없다. 여기서 당연해 보였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을 해본다. 무엇이 한국에서의 나를 치열하게 만들었던가?


버그나 장애

다른 유럽이나 미국도 같은 방법을 쓰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회사는 일주일마다 돌아가면서 장애를 처리하는 담당자를 두고 나머지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갑자기 장애가 나더라도 팀 전체가 주말에 메신저에서 모이는 일은 없다.

내 느낌엔 담당자가 혼자 이슈를 잘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우선 한 명이 전체 업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정도의 팀 규모를 유지한다. 그리고 알람, 모니터링과 인프라 설정 변경 같은 운영을 위한 플랫폼이 잘 갖추어져 있고 팀마다 알아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일원화가 되어있다. 불편한 것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쓰던 것보다는 훨씬 촘촘하고 거의 다 자동화되어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종류의 사내 플랫폼을 담당하는 팀이 진짜 진짜 많다.


방전

나를 팀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buddy가 있다. 한 번 감기에 심하게 걸렸었는데, 버디가 "일할 때 아픈 건 괜찮지만 주말엔 아프면 안 되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일과 삶의 밸런스에 대한 사고방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다. 블로그를 마무리하려고 회사에 늦게까지 있어보니 늦어도 저녁 6시가 넘어가면 모두가 퇴근한다. (참고로 출근은 9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에서 완전히 방전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주어진 일을 끝내기 위해 키보드를 부실 것처럼 일하고 퇴근하거나, 야근을 하거나, 아니면 주말에 일을 해야 하는 날이 많았는데 어떤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침대에 눕기 바빴다. 지금은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컨디션이 훨씬 좋아서 집에서 다른 일을 할 에너지를 가지고 퇴근한다.


스웨덴에서의 멘탈

문제는 내가 빠른 속도에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평화 안에 있어보니 오히려 불안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입사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나한테 조금의 시간조차 허락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는 이직이 처음이었고 팀 사람들한테 잘 한다는 이미지를 빨리 남기고 싶었다!

회사가 커지고 플랫폼이 갖추어질수록 한 팀이 담당하는 부분 주위로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추상화된 기능들이 잔뜩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큰 그림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나도 알고 있다. 한 회사에서 4년을 일한 나도 퇴사 직전까지도 사내 플랫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팩트를 무시하고 내가 이 회사에 갑자기 나타난 슈퍼 개발자라도 되는 양 모든 것을 바로 이해하고 처음 하는 것마다 한 번에 성공하길 바랬다.


나는 여기 속도에 맞추려는 와중에도 아직 한국과 스웨덴 중간에서 계속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여태까지의 이야기가 전부 좋아 보였다더라도, 진짜 좋을 수도 있지만 빠른 것보다 여유로운 것이 보편적인 좋음에 더 가까워서일 수도 있다. 나는 아직 답을 내리지 않았다.

진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 '나는 이것이 더 좋아'라고 결정하기 전에 1~2년 정도 전혀 다른 시간을 가지는 것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단 스웨덴 회사를 불평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이것이 최선인 것처럼 살아볼 생각이다. 정말 내년에 걱정했던 것처럼 뒤쳐질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다른 어딘가가 더 자라지 않았을까? 인생에 그 정도의 낭비는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스웨덴 #개발자 #해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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