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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Aug 26. 2018

스웨덴에서 느낀 것: 언어편

스톡홀름살이 2

24th August 2018


오늘은 두 번째 직장에서 첫 번째로 월급을 받은 날이다. :-D 첫 출근이 7월 17일이었는데 7월 월급날과 가까워서 그냥 지나갔고, 새로 이주한 사람들을 위한 보상을 받는데 문제가 있었지만 오늘 해결했다.

처음 도착한 날까지 생각하면 스톡홀름에서 지낸 지 벌써 두 달 째이다. 친구들로부터 여기 생활은 어떻냐는 질문을 받으면 보통 '좋다'라고 간단히 대답하는데, 느낀 점을 카테고리별로 자세히 적어보려고 한다.


두 번째 글에서 ( https://brunch.co.kr/@ggool/2 ) 에서 미국 교환학생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때도 영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지금보다 사용하는 시간도 적었고 (언어적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과 친해졌고 그들과 나의 영어 실력은 비등비등했으므로 서로의 영어를 도와주면서 대화해야 했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하루에 8시간은 꼬박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일한다.


일상 대화가 주는 이질감

솔직히 처음 2주 정도는 평범한 대화를 따라가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문제는 '일상적인 대화'였다. 사전의 이른바 비속어를 포함하여 일상적인 단어들은 외운 적이 없기 때문에 알 리가 없었다. 간간히 스웨덴어를 섞어서 쓰면 따라가기 더 어려워진다. 모르는 단어들이 대화를 타고 계속 흘러나오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속도와 억양을 가지고 말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스트레스였다. 언젠가 유럽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 언어와 스웨덴어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어느 정도로 영어를 못 알아들을 수 있는지 시험받는 느낌이었다.

스스로한테 '소통의 문제'를 느끼기 시작하니까 처음에는 동료들과 쉽사리 가까워지기 힘들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것은 내가 스웨덴에서 직면한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얼마나 무시해도 괜찮은지 매번 저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화를 무시하려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지만, 천성이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길 뿐더러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을 알고 싶고 그들이 고민하는 것들이 궁금했다.


대화 문화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가지는 대화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일했던 회사의 것과 좀 다르다. 어제저녁에 뭐 했고 이번 주말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등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한국 사람들보다 많이 하고 그중에 놀랍게도 어떤 걱정이나 일 이야기는 없다. 일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가 회사 안에서도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 같다. 심지어 제일 처음 다르다고 느낀 것이 출근하자마자 자리에 박혀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농담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개인 칸막이가 없고 큰 공간을 한 팀이 공유하는 개방된 구조다. 우리 팀 공간은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데 아침이면 가운데로 자기 의자를 끌고 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전 회사가 '고독하다'고 표현했다. 너무 혹독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일 안에 갇혀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출근하자마자 자리에 앉아서 일을 시작하고 같이 커피 마시는 중에도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공유해야 했던 환경보다 지금이 나은 것 같긴 하다.

대화에 걱정이 없는 것도 정말 신기한 문화 차이라고 생각한다. 육아의 힘듦, 집 걱정, 돈 걱정 같은 것들이 여기 대화에는 없다. 일 할 때와 하지 않을 때를 구별하는 것 처럼 개인 문제는 회사에서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걱정이 없을까? 이것은 스웨덴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일

영어 이야기로 돌아와서 내 상황을 자세히 보면, 이것은 대화의 context를 얼마나 아느냐의 문제지 언어 자체를 못 쓴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일 하면서 문서와 개발 서적을 읽고 인터뷰를 준비할 때 영어를 사용했으므로 이런 류의 내용은 잘 이해할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개발 이야기는 수월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프레젠테이션이나 문서도 괜찮다. 같은 맥락으로 이런 종류의 영어를 계속 보아왔기 때문이다.


난 스스로한테 완벽을 원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글과 영어는 표현기법부터 다른 전혀 전혀 다른 언어이며 나한테 영어는 제2외국어다. 한국에서 자라서 나만큼 영어를 쓰는 것은 꽤 잘하는 수준이라고 본다, 그것에 자신감이 있어서 해외로 이직하지 않았던가. 다만 제2외국어이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하필 크게 다가온 것뿐이다.

지금 바로 모든 것이 완성될 필요는 없다. 사실 오퍼를 받고 리크루터와 대화하면서 언어 때문에 걱정된다고 했었는데, 일을 시작하면 하루 종일 노출되기 때문에 다들 금방 빨리 배운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다, 나한테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억양은 금방 익숙해질 것이고 모르는 단어는 알면 된다. 그리고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얼마 전에는 이사하고 처음으로 책을 구매했는데 영어 소설을 샀다. 동작이나 느낌에 관한 모르는 단어가 있어서 학생 때처럼 단어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책도 계속 읽고 넷플릭스도 보면 된다.


... 그리고 대화를 꼭 다 이해할 필요가 있는지도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지나치게 노력하진 않았던가? 이직을 처음 하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보니 조급했던 것 같긴 하다. 관계에서 더 쿨해질 필요가 있다. 전 직장에서 가까운 동료들이 많았다고 여기서도 그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분명 좋은 동료를 만나게 될 것이다. 기다리자.

사람들과 가까워지는데 유창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가? 경험에 비추어보면 유창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두 명의 친한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 명은 미국에서 만났고, 다른 한 명은 한국 대학교에서 만난 유학생 친구다. 나와 친구들은 다른 언어권에서 자라서 대화에 평소보다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어쩌면 대화가 한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를 가깝게 느끼고, 먼저 연락하고, 친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 인연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설명할 순 없지만 언어는 많은 고리 중의 하나일 뿐이다.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대화를 꼭 다 이해해야 하나? 아니다. 나는 개발자고 일을 할 수 있으면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멋있다 :D 모두 내가 꽤 용감한 선택을 했다고 말하며 그런 만큼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면 스웨덴에서 나에게 더 잘, 더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프로니까 개발에 대해서만큼은 물러날 생각이 없지만 그 외에는 나를 좀 봐줘도 된다. 그리고 솔직히 스웨덴어와 독일어의 차이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나의 대단함에 조금의 흠집도 내지 않는다!!


전화통화와 Svenska

전화가 처음에는 꽤 무서웠는데 두어 번 하니까 금방 익숙해졌다. 전화와 화상통화는 또 다른 무서움(?)이 있다. 전화로 테이블 예약도 처음 해봤고 고객센터 문의도 해봤다. 나는 하루의 여덟 시간을 영어로 생각하고 말한다. 막상 해보니까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번 주에는 회사에서 스웨덴어 수업을 시작했다. 비기너 레벨의 파트 1이다. 무언가를 바닥부터 배운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유럽 사람들은 어릴 때 제3외국어를 배운 가닥이 있어서인지 처음부터 잘 따라 하더라. 아직 알파벳도 잘 못 읽고 아마 우리반에서 내가 제일 못 하겠지만 여기에서도 완벽함은 기대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괜찮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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