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발자 꿀 Apr 06. 2020

코로나19, 스웨덴 외노자에겐 무슨 일이

스톡홀름살이 16

3월 11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한국에 있었을 것이다. 출국 이삼주 전부터 내 스케줄을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진짜 오는 거니', '비행기표를 못 바꾸니' 같은 걱정 섞인 연락을 하루 걸러 받았고, 고민 끝에 비행기표를 포기하고 코로나가 잠잠해지기 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비행기표를 결제했던 1월에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당연히 환불 불가 옵션을 선택했었다. 3월 중요한 날에 일정을 맞추느라 우한이 이러쿵저러쿵해도 무조건 가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신천지가... 신천지가... 이많희 ㄱㅐㅅㅐㄲㅣ...

핀에어에서 몇몇 중국 루트를 이미 취소하고 심지어 뒤늦게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한 이탈리아를 취소했을 때도 신기하게 한국행 만큼은 공지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특수한 상황이니만큼 환불이 가능한지 고객센터에 물어보면 정책상 불가능하고 철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으니 연락을 기다리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래서 어딘가에 기부한 셈 치고 있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출국 일주일 전에 핀에어에서 항공편을 취소해서 비행기표 환불 신청을 할 수 있었다. 한 달이 걸릴 거라고 했는데 솔직히 1년 안에만 받으면 감지덕지일 것 같다.




우한부터 우리나라까지 코로나로 시끌벅적할 즈음, 회사로부터 위험 국가로 출장을 자제하고 돌아오면 2주간 WFH 하라는 권고가 나오긴 했지만, WFH을 시작하기 이삼일 전만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에서 코로나는 강 건너 불구경에 가까웠다.


자신들의 미래를 한 치 앞도 알지 못했던 회사 사람들은 휴가를 취소했다고 하면 코로나에 걸릴까 봐 무서워서 안 가는 것이냐고들 했다. 그들이 뉴스로 보고 듣는 코로나는 전 국민의 얼굴을 마스크로 가려버린 전염병이었을 테니까.

나는 스웨덴 뉴스를 안 보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코로나에 대한 어떤 내용을 뉴스로 뽑았는지 거의 모른다. 다만 코로나가 강 건너 불구경이던 시절 동료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것은, 여기 사람들은 코로나가 전염된다는 것은 알아도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코로나에 걸릴까 봐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가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기 때문이라며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는 2주 동안 문을 닫고 친구들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제야 다들 '아...' 했다.


그렇다. 일 년에 한 번 큰 맘먹고 가는 외노자에게 진짜 최악은 돈, 시간이 낭비되고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이다. 내 몸이 우리나라에 있는데도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내야 한다면. 친구들을 편하게 만날 수 없고 같이 하기로 했던 일들을 못 한다면. 가고 싶었던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면. 1년 동안 쌓아온 기대들을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너무 많이 포기했기 때문에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돌아왔을 때 받을 시선이나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스웨덴은 평소 인종차별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편이지만 마음을 놓지 쉽지 않은게 아시안이 많지 않은 유럽에 사는 한국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South Korea가 기사에 자주 오르내리는 때에는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신경 쓰인다. 내가 한국에 갔다 왔다는 말이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을 때 파생될 이야기가 싫고, 잠재적 바이러스 보균자 한국인으로 보일 수 있는 여지가 불쾌하다.

지하철에 막 앉았을 때 내 얼굴을 쳐다보곤 다른 데로 가버리는 사람의 의중이 무엇이듯, 이게 인종차별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것 만으로 일상에 피로도가 엄청나게 올라간다. 실제로 눈에 띄게 멀찍이 피하거나 같은 공간에 있기 불쾌해하는 사람들을 마주친 친구들이 주변에 없지 않다. 다시 한번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불편한 상황을 혼자서 맞닥뜨려야 했던 그들의 경험과 없어도 괜찮았을 감정적 소모들이 나는 안타깝다.




이전 글에 썼던 말 많은 동료는 이번에도 나를 기함하게 했다. 이른바 재택근무 사건. 친구들이 막 재택근무를 시작했을 때 한국 회사는 WFH 문화가 시작 단계라고 했을 때 그의 다음 말,

"왜 흔하지 않은 거예요? 회사가 사람들을 못 믿어서?"

이 말을 계기로 나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결정을 끝내고 그의 필터링 없는 일차원적 말하기를 싸가지 없음으로 정의 내리기로 했다.


언젠가 점심을 먹으면서 만약에 코로나에 진짜 걸릴 거면 한국에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옆에 있던 재택근무 사건의 그는 도무지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스웨덴 사람들의 의료 서비스 자랑을 듣고 있으면 찐 의료강국 국민인 나로서는 이 정도 수준으로 부심을 부리는 그들이 짠할 때가 있다.

병원 자부심의 뿌리는 '아플 때 병원비를 부담하지 않는다'인데 이 혜택을 받으려면 정말 정말 정말 아파야 하고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며 절차가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스웨덴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전부터 이 나라는 사람들을 보호할 준비가 안 되어있고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끝장이라는 심정이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대부분의 나라가 썩은 동아줄 의료였던 것처럼 스웨덴 또한 여지없는 것 같다.

* 4월 5일 기준 확진자 수 대한민국 10,237명, 스웨덴 6,078명. 인구는 우리나라가 스웨덴의 약 5배.




... 다음 편에 계속!



30th March 2020

#스웨덴 #해외취업 #해외생활


작가의 이전글 외노자의 임시 주거 상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