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살이 17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로 한 달에 못해도 한 번은 글을 올리려고 했고, 사실 한 달에 한 번이 나의 최대인 것 같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를 써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로는 글을 쓸 마음이 거의 안 들었다. 미리 잡아둔 마지막 게시글 다음 내용의 플롯은 너무 오래돼서 버려야 할 것 같다.
금요일 밤에 '이번 주말에는 꼭 시작해야지...'라며 잠들어도 충분한 원기 모으기에 실패하길 두 달. 여기 스웨덴은 Midsummer's Day 연휴로 어제, 19일 금요일부터 휴일이었는데 멀리 가지도 못하고 할 일도 없어서 드디어 몇 자 적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감사하게도 - 라는 말이 필요하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현재 상황에 타격을 크게 받지 않아서 서로 집에 있을 뿐 사무실에서와 변함없이 일을 한다. 평일에는 일어나서 요가, 아침 먹고, 5시나 6시까지 일하고, 저녁 먹고, 사부작대다가 잠에 든다.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까 저녁 시간이 더 많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낮에 집중 못해서 늦어진 일을 저녁에 할 때도 있고, 그게 아니면 그냥 머리 스위치를 끄고 진공상태로 있는다. 나는 절대 타고난 집순이가 못 된다. 이동이 없으니까 기분 전환이 거의 안되고 생각 정리를 못한다. 일은 회사에, 요가는 요가원에 두고 와야 집에 홀가분하게 앉아서 다른 생산을 하는데 모든 게 집 안 지척에 널려있다 보니 하루 종일 거미줄을 휘젓는 기분이다.
누구는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시간만큼 산책을 한다기에 나도 '퇴근 산책'을 몇 번 해봤다. 분명히 너무 귀여운 아이디어인데! 기분이 나아지긴 하는데 산책을 하면 당연한 거 같고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은... 애매한 기분... 걸으면서 나는 후천적 집순이가 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다면 너무 부정적인가.
집에서 수련을 하다가 요가원에 일주일에 몇 번 나가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스웨덴에 코로나 때문에 사망자가 그렇게 많다던데 왜 요가원에 나가냐!!'라는 잔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아빠가 하도 걱정하셔서 말씀을 안 드리고 있는데 혹시 블로그를 읽으시는 건 아니겠지... (.Y .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봄부터 회사 안에서 일어났던 변화들과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마음 앓이를 좀 했다. 일부는 그냥 흘러가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매니저랑 상담도 하고 해결하려고 노력도 했는데, 어떻게 끝이 나든 간에 상황이 진전되어가는 시간을 견디는 것 자체가 그냥 버거웠다. 이런 경험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도 아닌데. 재택근무로 가뜩이나 마음이 쪼그라들고 짜증뿐이라서 평소처럼 무던하게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이럴 때 마음을 다시 살살 펴주는 게 요가인데 집 수련으로는 마음이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더라. 다른 수련자들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이 정도로 컸나? 수련 시간도 바꿔보고 일부러 덥게 입어보고 자리도 바꿔보고 이것저것 실험해봐도, 집 수련이 길어질수록 수련이 성에 안차고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더니 오히려 이상한 방향으로 집착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았다.
당연히 혼자 하면서 배운 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혼자서 수련을 긴 시간 유지할 깜냥이 부족했다. 나를 제일 많이 구해준 게 요가였는데 이것마저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이 시간을 나를 해치지 않고 오래 견디기 위해 아껴뒀던 마스크를 챙겨 요가원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요리해서 먹고 치우고, 뜨개질을 하고 화분을 돌봤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방 배치를 바꿀 때 주방과 거실에 있던 화분들을 방 안으로 들여왔다. 겨울에는 겨우 살아만 있는 것 같더니 해가 길어지니까 하루가 다르게 새 잎이 나오는 게 신기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잎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건강한 잎의 촉촉함과 적당한 차가움을 만지는 게 좋다. 거기에는 동물의 온기와 다른 결의 생명력이 있어서, 쿵쿵대면서 움직이거나 소리 지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그 느낌이 특별하다.
좀 웃기지만 가끔 내 식물 친구들은 이미 화분 속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격리는 조용한 자기만의 전쟁이다. 계속 새 잎을 틔우고 뿌리를 뻗는 것 만이 유일한 목적일 뿐 어떤 외부 요소의 개입이 없다. 그래서 그토록 묵묵하고 꾸준한 걸까.
화분 속 '스스로 온전함'이 나의 조용한 전쟁의 결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팬데믹을 겪으면서 배워야 할 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힘든 경험을 하면 언제나 이 주제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나다움을 알고 혼자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온갖 고독과 고립 안에서 고요해지는 법.
그래서 이 시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고민하고, 남들에게 보이지 않지만 힘껏 싸워야 한다.
20th June 2020
#스웨덴 #해외취업 #해외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