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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Jun 22. 2020

코로나19, 그냥 요즘 생각

스톡홀름살이 17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로 한 달에 못해도 한 번은 글을 올리려고 했고, 사실 한 달에 한 번이 나의 최대인 것 같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를 써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로는 글을 쓸 마음이 거의 안 들었다. 미리 잡아둔 마지막 게시글 다음 내용의 플롯은 너무 오래돼서 버려야 할 것 같다.

금요일 밤에 '이번 주말에는 꼭 시작해야지...'라며 잠들어도 충분한 원기 모으기에 실패하길 두 달. 여기 스웨덴은 Midsummer's Day 연휴로 어제, 19일 금요일부터 휴일이었는데 멀리 가지도 못하고 할 일도 없어서 드디어 몇 자 적기 시작한다.


사무실 :)


나는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감사하게도 - 라는 말이 필요하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현재 상황에 타격을 크게 받지 않아서 서로 집에 있을 뿐 사무실에서와 변함없이 일을 한다. 평일에는 일어나서 요가, 아침 먹고, 5시나 6시까지 일하고, 저녁 먹고, 사부작대다가 잠에 든다.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까 저녁 시간이 더 많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낮에 집중 못해서 늦어진 일을 저녁에 할 때도 있고, 그게 아니면 그냥 머리 스위치를 끄고 진공상태로 있는다. 나는 절대 타고난 집순이가 못 된다. 이동이 없으니까 기분 전환이 거의 안되고 생각 정리를 못한다. 일은 회사에, 요가는 요가원에 두고 와야 집에 홀가분하게 앉아서 다른 생산을 하는데 모든 게 집 안 지척에 널려있다 보니 하루 종일 거미줄을 휘젓는 기분이다.

누구는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시간만큼 산책을 한다기에 나도 '퇴근 산책'을 몇 번 해봤다. 분명히 너무 귀여운 아이디어인데! 기분이 나아지긴 하는데 산책을 하면 당연한 거 같고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은... 애매한 기분... 걸으면서 나는 후천적 집순이가 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다면 너무 부정적인가.




집에서 수련을 하다가 요가원에 일주일에 몇 번 나가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스웨덴에 코로나 때문에 사망자가 그렇게 많다던데 왜 요가원에 나가냐!!'라는 잔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아빠가 하도 걱정하셔서 말씀을 안 드리고 있는데 혹시 블로그를 읽으시는 건 아니겠지... (.Y .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봄부터 회사 안에서 일어났던 변화들과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마음 앓이를 좀 했다. 일부는 그냥 흘러가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매니저랑 상담도 하고 해결하려고 노력도 했는데, 어떻게 끝이 나든 간에 상황이 진전되어가는 시간을 견디는 것 자체가 그냥 버거웠다. 이런 경험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도 아닌데. 재택근무로 가뜩이나 마음이 쪼그라들고 짜증뿐이라서 평소처럼 무던하게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이럴 때 마음을 다시 살살 펴주는 게 요가인데 집 수련으로는 마음이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더라. 다른 수련자들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이 정도로 컸나? 수련 시간도 바꿔보고 일부러 덥게 입어보고 자리도 바꿔보고 이것저것 실험해봐도, 집 수련이 길어질수록 수련이 성에 안차고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더니 오히려 이상한 방향으로 집착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았다.

당연히 혼자 하면서 배운 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혼자서 수련을 긴 시간 유지할 깜냥이 부족했다. 나를 제일 많이 구해준 게 요가였는데 이것마저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이 시간을 나를 해치지 않고 오래 견디기 위해 아껴뒀던 마스크를 챙겨 요가원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클루시아, 이름은 줄리아. 왼쪽은 처음 왔을 때, 오른쪽은 지금.


나머지 시간에는 요리해서 먹고 치우고, 뜨개질을 하고 화분을 돌봤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방 배치를 바꿀 때 주방과 거실에 있던 화분들을 방 안으로 들여왔다. 겨울에는 겨우 살아만 있는 것 같더니 해가 길어지니까 하루가 다르게 새 잎이 나오는 게 신기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잎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건강한 잎의 촉촉함과 적당한 차가움을 만지는 게 좋다. 거기에는 동물의 온기와 다른 결의 생명력이 있어서, 쿵쿵대면서 움직이거나 소리 지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그 느낌이 특별하다.

좀 웃기지만 가끔 내 식물 친구들은 이미 화분 속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격리는 조용한 자기만의 전쟁이다. 계속 새 잎을 틔우고 뿌리를 뻗는 것 만이 유일한 목적일 뿐 어떤 외부 요소의 개입이 없다. 그래서 그토록 묵묵하고 꾸준한 걸까.


화분 속 '스스로 온전함'이 나의 조용한 전쟁의 결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팬데믹을 겪으면서 배워야 할 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힘든 경험을 하면 언제나 이 주제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나다움을 알고 혼자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온갖 고독과 고립 안에서 고요해지는 법.

그래서 이 시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고민하고, 남들에게 보이지 않지만 힘껏 싸워야 한다.




20th June 2020

#스웨덴 #해외취업 #해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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