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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Aug 30. 2020

이건 의미 없는 외로움일까

코로나19 중에 맞이하는 입사 2주년을 정리하며.


신기하지만 신기할 것도 없이 스웨덴에서 또 다른 1년을 지나 보냈다. 이번에는 2년마다 만료되는 비자도 갱신했다. '5년은 된 것 같은데 2년밖에 안 지났니'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는 걸 보면 주변 사람들은 내가 한국을 떠나 있었던 시간이 한 세월쯤 된다고 느끼나 보다. 못해도 6개월에 한 번은 만나던 사람이 무소식이 희소식이요... 하고 연락이 없으니 이해는 가지만, 정작 내게는 2년이 몇 개월 같았기 때문에 아주 조금 억울하다.



나는 매일같이 흔들린다. 이전에도 covid19에 대해 글을 올렸었지만 요즘에는 더더욱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재택근무를 한지 벌써 6개월이 넘었고 우리 회사는 내년 6월까지 연장돼서 꼬박 1년을 더 이렇게 일을 하라고 하는데, 방 안에 앉아서 매일같이 왜 스웨덴에 사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무지 의미 없는 외로움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나는 외로움이 아니지만 외로움이 나를 결국 정의하는 것 같아서.


이 생활은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자신과의 다툼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유일한 결정권자이자 실행자인 내가, 결정을 지지하지 않는 나를 끊임없이 설득시켜야 한다.

어떤 날에는 회사 사람들이 한심해 보여서 내 노동력이 아깝다가도 다른 날에는 아직 배울게 너무 많아서 초조해지기 일쑤였다. 심지어 출퇴근 시간에 들을 팟캐스트가 영어여야 하는지 한국어여야 하는지조차 고민하던 나였다. 이렇게 하루하루의 감정이 출렁이면 습관적으로 지나간 시간을 들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나간 일을 붙잡으면 당장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현재를 살지 못한다. 예전 일을 기억에 의존해서 마구잡이로 꺼내면 현재의 상태를 주입해서 자꾸 과거를 마음대로 다르게 본다. 그래서 똑같은 일이 점점 힘들어지거나 점점 더 행복해진다. 목표가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목표의 의미를 계속 과거에서 가져오면 언젠가는 의미 없는 고생을 왜 하고 있는지 대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의 2년 차 스웨덴 생활은 어떤 것에도-특히 과거의 나에 결정에- 저항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법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1년 동안 회사에서 좋은 일들이 제법 있었다. 인터뷰를 리딩하기 시작했고 여차 저차 해서 승진도 했다. 또 우리 팀 업무 외에 틈틈이 개발해서 나의 이름을 물려받은 자식(?)들이 세상 밖으로 많이 나왔다. 개중에는 팀 안에서만 쓰고 있던 작은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커져서 심지어 사내 상용화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next generation 어쩌고저쩌고 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여서 아이디어 하나를 열심히 팔고 있다. 여기에 나는 매우 진심으로 12시까지 야근하던 나의 근성을 쏟아붓는 중이다. 예전부터 결론이 안 나고 서로 생각만 쏟아내던 주제였는데 다른 프로젝트와 맞물려 같이 해볼까...? 해서 시작했더니 우리 팀 사람들이 다 같이 진심이 되었다. 사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말했던걸 주워 먹었을 뿐인데 credit을 가져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열심히 문서 만들고 회의 잡고 코딩한 건 나니까... ㅇ_<



오늘의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천천히 달라지고 있다고 믿는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방 안에 앉아있는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는 그 순간에. 수련을 끝까지 못하고 요가매트에 누워버렸을 때. 집을 뛰쳐나온 산책길에. 호시탐탐 회의에서 끼어들 기회를 노리며. 내가 틀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블로그에 글을 쉰 개 가까이 쓴 것만 봐도 그렇다. 한 달에 하나씩 올린다는 계획을 완수했고 그 사이 변변치 않은 글 솜씨가 아주 조금 늘었다. 나는 감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법을 배웠다. 글 안에서 기승전결이 생기면 기분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떠도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영역이 생기고 앞뒤가 확실해져서 끊어내고 뒤돌아서기가 쉬웠다. 또 원하면 다시 돌아오기가 쉬워진다. 예전에 올린 글 중에 주기적으로 읽는 글이 하나 있는데, 읽을 때마다 글을 쓸 당시 했던 다짐 딱 그 정도만 느낄 뿐 마음대로 당시 상황을 바꿔서 인생을 드라마처럼 보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의를 기울여 읽을만한 양질의 글이 아님에도 시간을 들여 읽어주는 누군가가 계시다면 감사하다. 코멘트와 메일을 보내주셨던 분들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분명 의미 없는 외로움은 아닐 것이다. 나의 여정 사이에 아주 긴 명상 같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지, 앞으로 또 다른 2년을 더 잘 보내라고. 그러니 이 잠시간의 고요도 의연하게 지나치겠다.



19th August 2020

#스웨덴 #해외생활 #개발자 #해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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