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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Dec 07. 2020

코로나19, 한국에서 6주 원격근무

외노자 코로나를 뚫고 한국에 가다.

지난 3월 코로나로 인한 항공편 결항으로 한국 휴가를 한 번 취소한 후, 유럽의 코로나 대격변을 몸소 경험하다가 7월 말에 한국에 갔다 왔다. 3월에는 코로나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부의 난리일 뿐이었는데 갑자기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이 엄청난 코로나 확진자 수로 난리가 나는 등, 불과 몇 개월 만에 세상이 많이 변했다.

전화위복이랄까 돌이켜봤을 때 3월에 '못' 들어간 일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이에 코로나가 정말 난리가 나서 회사 WFH이 장기전으로 돌입했고 그 덕분인지 내가 한국에서 원격으로 조금 오래 근무하는 것을 모두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3월에 비행기가 취소된 일도 있었고 타국에서 혼자 사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모두 기꺼이 이해해준 탓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회사 사람들이나 사적 친구들 사이에는 일단 겨울까지 고향땅 입국을 미루는 분위기가 보통이었고 그중에 내가 가장 빨리 한국에 갔다 온 편이다.




어차피 모두 원격으로 일한다면 사람이 어디에 있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절반이 맞은 덕분에 한국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을 극복하고 원격 근무를 6주 할 수 있기까지 회사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야 했다.


가깝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는 시차 문제가 있다. 여름에는 한국이 스웨덴보다 7시간 빨라서 마음만 먹으면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일하면 되는데, 이 사이클을 지난번에 한국에서 잠깐 해본 경험상 (이전 글: 리모트로 일하다) 일하는 시간을 바꾸는 것은 생물학적 아침형 인간인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확실했다. 그래서 업무 시간을 스웨덴 기준으로 조정하는 대신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팀이 어떻게 일할 것인지 미리 설명하고 다 같이 합의했다.

한국으로 가기 전 'WFK (Working from Korea) playbook'이라는 문서를 만들어 겹치는 시간이 언제고 배포나 회의는 어떻게 할지 등을 적어서 모두에게 리뷰를 받았다. 사실 뻔하고 짧은 문서였지만 내가 바뀐 상황에서도 일을 책임감 있게 하겠다는 약속 같은 의미로, 그리고 다른 시차에서 일하는 사람은 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도움은 별게 아니라 모든 description을 잘 채운다, 업무 티켓을 바로바로 업데이트한다, 팀 미팅은 나도 참여할 수 있는 시간에 최대한 잡는다, 뭐 이런 거였다.


주변에서 나 같은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너무 뻔뻔한가 생각도 했다. 아빠가 종종 말씀하시는 '회사에서 남들에게 피해 주지 말아라'라는 말이 괜히 찔리기도 하고. 그러나 팀 사람들이 아주 조금 더 바쁠지언정 나 때문에 아무도 초과근무를 해야 하는 게 아니니까 그냥 했다. 내가 부탁한 도움이 별게인가, description 잘 채우기가 귀찮다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암묵적으로 귀찮음을 이해하는 것일 뿐 자세하게 쓰면 쓸수록 좋은거니까 이참에 연습이나 열심히 하라며 그냥 밀고 나갔다. ^^


물론 모두에게 평소와 다른, 조금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하루에 거의 7시간을 혼자 일하면서 번번이 문제를 혼자 해결하고 고민으로 많은 시간을 썼고, 가끔 나태 지옥에 빠져서 성과 없이 지나간 날도 있었다. 당연히 팀에서 고립되는 느낌도 들었다. 봄에 한국에 들어가서 스웨덴에서 하던 일을 리모트로 계속했던 친구가 하루 한 번 스웨덴 사람들과 하는 회의가 전화 영어 같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나 또한 오후 두세 시간 동안 전화 영어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팀은 내가 한국에 가기 직전에 주니어 한 명을 채용했다. 시니어 두 명이 여름 동안 휴가에 간 사이, 나머지 남은 나는 스웨덴 업무시간에 오프라인이기 때문에 우리 팀 주니어 친구들은 물어볼 사람 없이 둘이서 많은 일을 해결해야 했다. 이건 개인적으로 살짝 미안했다. 그래도 둘이서 안되면 다음날 물어보거나 SOS를 보내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지랖 떨지 않고 (뻔뻔하게) 기다렸는데 평소보다 느리지만 내 도움 없이 끝맺음을 하긴 하더라. 그 주니어 친구들은 둘이서 사부작 거리면서 많이 배우고 친해지고 자신감도 많이 채웠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 공지에 의하면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도 원래 근무지 나라 밖에서 일할 수 없다. 출장이나 장기 휴가로 1~2주 정도 스웨덴 밖에서 일하는건 괜찮지만 이번 내 일정처럼 한 달 넘게 스웨덴 밖에서 일하는건 안된다고 가이드를 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회사 방침을 어겼던 셈이다! 휴가를 정하기 전에 내 매니저의 매니저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했을 때 그가 우리 부서 HR 담당자와 이야기를 했는데, 이 HR 담당자는 사실 '외국인 근로자가 스웨덴 밖에서 장기 근무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인지 회사의 입장보다 느슨하게 상황을 보고 몇 가지만 확실하면 나가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한국에 개인 보험이 있다고 말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날짜를 알려주고 손쉽게 허락을 받게 된 것이다.


원래는 6주보다 더 길게 한국에서 일할 생각이었는데 스웨덴에서 올해 6월에 영주권 법을 바꾼 것을 우연히 알게 되고 중간에 계획을 바꾸었다.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분을 통해 작년에 입사한 또 다른 한국분을 소개받았는데 그도 마침 같은 기간에 한국에 있다고 해서 시간이 맞으면 서울에서 만나자는 채팅을 하던 때였다. 서로 얼마나 한국에서 일할지 말하다가 그녀가 회사에서 들은 내용과 내가 들은 것이 너무 달라서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영주권법을 다시 찾아봤다가 알게 된 것은 -

취업 비자로 4년 동안 스웨덴에 42개월 이상 거주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는 법이 4년 동안 44개월 이상 머물러야 한다고 6월부터 바뀐 거다. 다시 말하면 48개월 중에 4개월의 예외 기간만 허락된다는 건데, 바뀐 법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한국에서 한 달을 원격으로 일한 상태였고, 그럼 3개월이 남고, 다음에 한국에 들어올 때 남아있을지도 모를 자가격리 기간과 이전의 원격 근무를 합쳐보니 3개월이 너무 짧은 것 같고, 만약 여기에 휴가까지 포함되면 망했네...라는 기분이었다.

이 내용은 회사가 나를 고용하는데도 영향이 있어서 회사에서도 신경을 쓴다. 이번처럼 내가 오래 나가 있겠다고 한 경우에는 해당 내용을 알고 있는지 미리 확인을 하고, 이전 법 6개월 예외 기간을 넘지 않는걸 확실하게 하려고 출국과 입국 날짜를 미리 알려야 한다. 문제는 이 담당자도 바뀐 법을 몰랐던 것.


바뀐 법을 확인하려고 회사의 relocation 담당 부서에 문의를 했는데, 드디어 '외국인 근로자가 스웨덴 밖에서 장기 근무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진짜 책임자와 연락이 닿았다. 회사는 근로자가 있는 나라에 건강보험이나 세금을 낼 의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스웨덴 밖에서 일하면서 해당 혜택을 스웨덴에서'만' 받는 것은 엄연히 회사가 법을 어기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4년 중 4개월의 예외 기간에 유급 휴가는 포함이 안된다고.

여러 번 문의를 하고 끝끝내 짧게 전화까지 해서 확인하고, 나중에 또 한국에 들어올 때를 위해 스웨덴 외부 근무를 계획보다 빨리 마무리하고 바로 휴가를 썼다. 너무 급하게 휴가를 내서 oncall 로테이션 스케줄이 엉망이 된 문제는, 8월 휴가철에 엄청나게 많은 oncall을 대신 맡은 품앗이를 돌려받아 팀 사람들이 재빠르게 바꿔주었다 흑흑.


처음으로 비자가 잘못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봤고 내 신분이 비자에 묶여있다는 현실을 느꼈다. 뭔가 잘못되면 갑자기 잘릴 수도 있는 거구나. 건너 건너 비자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안타까우면서도 깊이 공감을 못 했던 건 운 좋게도 비자를 받는 과정이 너무 쉬워서였을거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다년간 expat을 많이 고용했고 비자가 만료되는 기간에 맞춰서 먼저 준비 서류를 보내주는 등 직접 해야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6월에 바뀐 법이 제대로 커뮤니케이션되지 않았던 일이나, 나와 내 동료가 들은 이야기가 상당히 달랐던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회사에 믿고 맡기는 것도 위험하겠다. 최대한 직접 알아보고 계속 물어보고 한번 더 확인하자.

+ 영주권을 신경 쓰는 이유는 내가 있고 싶은 만큼 여기에 살고 이 회사에 다니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4년을 꽉 채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10년 근속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번에 비자 설명을 진심으로 읽어보면서 배웠는데 취업 비자를 2년마다 계속 계속 갱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못해도 5년 안에는 결국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바로 전라도의 부모님 댁으로 가서 계속 거기서 일했다. 한국에 오고 첫 2주 동안 허리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누우면 아파서 잠을 못 잔다고 했더니 아빠가 스탠딩 데스크를 사주셨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한 번 등허리부터 다리가 저려서 고생한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고 걱정하셨던 것 같다. 책상다리에 있는 나사를 손으로 풀어서 책상 앞 절반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저렴 버전이었다. 내가 떠나면 아빠도 쓸모가 없어서 스웨덴으로 갖고 가기를 아주 원하셨지만 너무 무거워서 두고 왔다. 아빠 회사에서 2+1으로 구매한 커블체어 중 하나를 받아서 의자에 두고 썼다. 손연재가 노래부르는 티비 광고 바로 그거다. 이거는 캐리어에 넣어 가지고 왔다.

내가 부모님 댁에 도착하고부터 날씨가 점점 더워졌다. '사무실'은 낮 동안 해가 너무 잘 들어 뜨겁게 끓는 방이었는데 기어코 환풍기 없는 이동식 에어컨까지 사주셨다. 환풍기 대신 창문으로 호스를 연결해서 뜨거운 공기를 내보내는 방식이었는데 스탠딩 데스크, 커블체어와 공기청정기 크기의 에어컨까지 한국의 네오 테크가 집약된 쾌적한 사무실이었다. 그 집에 와이파이도 없었는데 나 때문에 잠깐 신청하셨다. 화상 회의한다고 제일 비싼 걸로.

등 뒤에 에어컨을 켜 두고 책상 앞에 서서 한동안 못 먹었던 한국 과자를 먹고 엄청 큰 아아메를 마시면서 코딩을 했던 나름 재밌는 시간이었다. 퇴근을 하면 한국에서 혼자 살 때 안고자던 버린 줄만 알았던 곰인형을 끼고 제일 비싼 인터넷으로 신나게 넷플릭스를 봤다. 아빠 만세.



18th October 2020

여름에 있었던 일을 가을에 쓰기 시작해서 겨울에 마무리하는.

#스웨덴 #개발자 #해외취업 #해외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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