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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Jul 04. 2019

리모트로 일하다

개발자가 스웨덴으로 이직한 썰 18

Remote Work


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 가끔 밖에서 노트북으로 일하곤 했다. 출퇴근 시간이 유동적이고 설정만 하면 내 컴퓨터로도 사내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어서, 장애 처리는 당연하고 일찍 퇴근해야 할 때 집에서 남은 일을 마무리하기에 유용했다. 요즘 들으면 신기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그 회사의 자율적인 출퇴근은 꽤 앞서갔던 문화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깐의 장치일 뿐으로, 관습적으로 허용되는 시간은 어쩌다 한 번씩 반나절을 넘어가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가 다니는 회사는 정기적으로 하루는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할 수 있다고 하는데, 몇 안 되는 지인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보면 '마음대로 Work from Home 하는 외국계 회사'의 문화가 한국에도 점점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마음대로 WFH 하는 외국계 회사'에 직접 다니기 시작했을 때 목격한 자유로움은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정해진 룰이 없기 때문이다. 택배를 받기 위해서, 아이를 돌보려고, 장염에 걸려서, 팀에 출근하는 사람이 없어서 집에서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을 벗어나 5시간짜리 기차 안에서, 주말에 다른 나라의 부모님 집에 갔다가 월요일에 그 집에서, 컨퍼런스를 위해 묶는 호텔에서 일하기 등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 때문에 다양한 곳에서 일을 했다.

한국 문화와 가장 큰 차이는 단연 제한 없는 자유로움이다. 꼭 출근을 하고 배지를 태깅하지 않아도 어디선가 업무 시간에 일을 했다면 그 날은 일을 한 것이다. 휴가는 매니저의 승인이 필요한데 리모트로 일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절차가 필요 없다. 컴퓨터도 전부 노트북을 쓰고 회사에서 주는 핸드폰으로 테더링을 하면 되니까 이동성도 회사에서 지원받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움은 상상 속의 북유럽 회사의 자유로움은 아닐 수도 있다. 우리 팀 개발자들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선택지가 없는 경우에만 사용하는 암묵적인 문화가 있다. 금요일이 휴일일 때 조금 긴 주말을 스톡홀름이 아닌 곳에서 보낸 후 다음 주 월요일에 리모트로 일하는 것이 개중 약한 이유인 것 같다. 누군가 아침에 갑자기 WFH이라고 했을 때 왜?라고 물어보는 것도 서슴없다. 아파서 쉰다는 사람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은 선상의 질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처음에 깜짝 놀랐는데, 아마 당연히 모두 납득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매니저들은 종종 집에서 일하곤 하는데, 우리 개발자들 5명 통틀어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다.


리모트 워크는 막상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개인적인 편차가 심하다. 동료의 예전 팀에는 금요일마다 집에서 일하는 개발자가 있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질문하러 불쑥 찾아오는 사람들, 메신저와 잡다한 소음들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주일에 하루는 조용한 공간으로 숨었다고. 그를 뒷담 화하는 무리들도 있었다는데 당사자는 금요일마다 엄청난 양의 코드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우리 팀은 얼굴을 맞댄 논의나 회사에 있는 내 공간을 좋아하는 성향으로 하나같이 리모트로 일하는 것은 '가끔은 괜찮지만 자주는 싫어'라는 말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옆에 물어보고 상의할 사람이 없어지니 답답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두 최선의 퍼포먼스를 위해 최소한 출근을 하는 노력을 보이는 셈이다. (일이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데 개발자에게는 너무나 드물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 팀은 심지어 아파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난하기도 한다. 아프면 휴가를 내고 쉬면 되니까!

(참고로 스웨덴은 연차를 사용하지 않고 Sick leave를 사용할 수 있고 기본 휴가가 20일이 넘는다)


5월, 해가 길어지고 야외 좌석이 생기기 시작한다.


Remote Oncall


나에게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왔다. 5월 - 하필 oncall 스케줄과 딱 겹치게 갑자기 한국에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겼다. 보통 oncall은 서너 달 먼저 계획을 세우고 개발자들도 비슷한 주기로 긴 휴가를 계획한다. oncall일 때는 휴가도 낼 수 없다. 누군가 사정이 생기면 보통 서로 그의 oncall을 맡아주려는 훈훈하고 상부상조하는 분위기이고, 서로 스케줄이 맞으면 한 주를 통째로 교체하기도 한다. 하지만 2주는 oncall shift를 바꾸기엔 너무 급박했고 5월에 긴 휴가를 쓰는 사람이 있어서 로테이션이 이미 빡빡한 달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국에 가서 하루를 쉬고 바로  리모트로 일하기로 했다.

(oncall이 궁금하다면 다른 글: '첫 On-call을 자축하며' https://brunch.co.kr/@ggool/24)


한국에 가자마자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러 들를 곳도 만날 사람도 많았다. 이 기간에 회사에는 일을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모두 하기 위해 시차가 나의 편인 것 같았다. 스톡홀름의 업무시간 [9 - 18]를 한국 기준으로 바꾸면 [16 - 25], 매일 아침 9:45 스탠드업은 한국 시간 16:45에 시작한다. 그래서 오전에서 밖에서 일을 하고 오후 4시 반 즈음부터 일을 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스웨덴 시차에 맞춰서 일할 필요는 없다. 한국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고 공유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oncall 때는 다른 사람들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 좋고 oncaller가 알아야 하는 내용은 메신저로 그때그때 공유하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되도록 맞추고 싶었다. 스톡홀름 사람들이 자는 시간에 문제가 생기고 부랴부랴 메신저를 뒤지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차의 마법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오전에 바쁘게 돌아다니고 저녁 시간에 제정신으로 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부터 틀렸다. 5월에 한국은 벌써 덥고 습했다. 나는 더위를 많이 타는데 20도가 안 되는 시원한 곳에서 살다가 서울에 가니까 딱 죽을 맛이었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컨디션으로 노트북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덥고 습한 서울을 낮 내내 누비고 다니면 기운이 보충될 틈이 없었다. 그래서 2라운드 일을 할 때에는 저녁에 절대 안 마시던 커피가 필요했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서울의 교통. 서울 끝자락에서 분당과 수원까지 몇 번을 왕복했을 때, 지하철을 타면 시간에 정확하지만 사람들 틈에 껴서 괴롭고 버스는 편안하지만 툭하면 막혀서 미팅 시간에 아슬아슬했다. 심지어 광역 버스 안에서 테더링으로 미팅을 한 적도 있다.


이직하고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간 나는 친구들을 만나려고 oncall 중에도 약속을 몇 번 잡았다. 사실대로 고백하면 꼭 해야 하는 일과 코드 리뷰를 좀 하고 업무 시간을 채우지 않은 채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날도 있다. 회사에서 내 사정을 대충 알아서 중간중간 일을 많이 안 해도 그러려니 했겠지만 친구를 만나느라 일 안 하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거다.

친구들은 반가웠지만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엄연한 업무 시간을 도둑질하니 마냥 즐겁지가 않더라. 우리 팀 채널에 계속 쌓이는 메시지가 모두 나를 멘션하고 빨리 읽으라고 독촉하는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그 어떤 때 보다 바쁘게 일하는 것을 눈 앞에 보는 기분이었다.


자유로움이 때로 개인의 진실성-integrity라고 주로 부르는-을 더 강하게 건드릴 때가 있다. 나의 경우 자유로운 문화는 이른바 성선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선설에 반하는 행동, 한국에서의 일탈 같은 것을 직접 하면 마치 그 믿음을 내가 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세상이 진짜 내 생각대로 돌아가고 있을까? 내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고 이런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디자인된 것은 아닐까? 회사에 얼마나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 -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인 것 같다. 우리 팀에 딱 봐도 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개인 일로 나머지 시간을 채우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결국 스타트업을 꽤 안정적으로 시작하면서 퇴사했다. 그에게는 회사를 이기적으로 다니는 게 이득이었던 거다. 하지만 그렇게 이기적이기엔 내가 너무 소심한 것 같기도 하고. 당연히 맨날 지하철 타고 출근했다 퇴근하는 루틴에서 벗어나니 별것 아닌 일로 별것처럼 보인다.




리모트로 일한 한 주의 감상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매일 출근하는 사람에게 리모트는 생각보다 큰 변화였고 공간이 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적당한 책상과 의자가 없어서 바닥에 앉아서 이틀을 일 하다가 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업무 공간을 빌리려고 했는데, 집과 너무 멀거나 가격이 비싸서 포기했다. 회사에서 집중이 그냥 오지 않듯 리모트도 훈련과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예전에 Github에 리모트로 일하는 포지션에 지원한 적이 있는데 레쥬메를 내려면 '리모트로 일 한 경험이 있는가', '리모트로 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그만큼 제대로 된 '리모트 경력직'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었나 보다.

별개로 리모트가 가능한 문화가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갑자기 한국에 간다고 oncall을 누군가 정말 무리해서 맡아주었다면 마음이 더 불편했을 것 같은데 직접 oncall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24th June 2019

#스웨덴 #개발자 #해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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