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스웨덴 회사로 이직한 썰 5
이직 물밑작업이 끝났다면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한다.
첫 번째 글 '이직 물밑작업에 대하여'에서 이어진다. https://brunch.co.kr/@ggool/1
>> 이직 물밑작업 https://brunch.co.kr/@ggool/1
1. 타임라인
2. 영어
3. 레쥬메
4. 링크드인
>> 회사 탐색
5. 어떤 회사를 원하나?
6. 회사 탐색
7. 나를 이해하는 일
>> 지원 https://brunch.co.kr/@ggool/10
8. 추천 채용
9. Cover Letter
10. 기록하기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이직한다고 말했을 때 그 회사를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떻게 지원했는지 많이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한국 개발자들이 이직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회사는 검색해서 알았고 직접 이력서를 넣어서 지원했다. 해외 취업에 이른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언어가 다르고 프로세스가 조금 다르니까 (다행히 한국 회사들도 점점 비슷해지는 추세다) 다른 접근방법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해내지 못할 어려움은 아니다.
외국계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는 능력자나 미국에서 일하는 한국인 개발자라고 해서 오오... 했다가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이민 또는 유학 후 자리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 주변에서 회자되는 멋진 헬조선 탈출기는 몇 년 동안 지나치게 많이 읽어서 나도 이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학위나 추천 없이 붙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주눅 들어있었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이뤘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쟁취 중에 하나다. 그리고 나도 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에는 작은 스타트업부터 어마어마한 대기업, 암호화폐부터 우주 쓰레기 수거까지 정말 다양한 회사가 있다. 나라를 포함해서 어떤 종류의 회사를 가고 싶은지 대강 생각해보는 것이 좋은데 특히 나라는 선택지를 좁혀서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내가 원했던 조건은 다섯 가지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1) 영어로 생활이 가능하고 안전한 나라
(2) Data Engineer로 지원
(3) 함수형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회사
(4) 한 가지 서비스에 집중하는 회사
(5) 작은 스타트업은 제외
조건(5)는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무엇보다 그 나라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고, 우리나라가 미친 듯이 싫어서 꼭 해외에 살기 위해 아무 직업이나 필요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에 대해서 많은 것을 미리 알아서 확신을 보장받기를 원했고 그래서 홈페이지가 유일한 정보이거나 막 시작하는 회사는 걸렀다. 막상 크게 실망하고 한 달만에 돌아오는 짓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신분을 지켜주고 어느 정도의 연봉을 줄 수 있는 정도로 자리 잡은 곳을 원했다. 돈 때문에 해외 취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은 자신을 지키고 생활에 기름칠하는 수단으로 매우 중요하다!
나라를 선택할 때 비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커리어를 생각하면 미국이 아직까지는 가장 기회의 땅이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H1B 복권 당첨이 필요한 고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비자 문제도 없고 똑똑한 이른바 탑 CS 학교 출신들에게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꼭 데려와야 하는 능력자는 유럽 오피스에서 리모트로 일 하다가 주재원 비자로 미국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이런 부류의 능력자는 아니다. ㅠㅠ
이런 불리한 상황 때문에 미국으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유학이라고 생각한다. 2년 동안 공부도 더 할 수 있고 일단 졸업하면 비자도 더 쉽게 받을 수 있다. 처음에는 미국으로 가고 싶어서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회사랑 병행하기 너무 힘들고 돈도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 GRE 주말반을 다니면 토요일 하루 종일을 학원에서 보내면서 5일 치 수업을 몰아서 듣고 나머지 일요일과 주중에는 도서관에서 복습하는 일과는 가끔 야근도 해야 하는 직장인에게는 너무 가혹한 스케줄이었다. 그리고 돈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씁쓸한 기억이나, 이런 중간 과정이 나를 독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원할 회사를 정하는 일은 시작해보면 생각보다 막막한 것 중에 하나다. 어느 나라의 어떤 회사에 어떤 포지션으로 지원할 것인가? 평소에 국외 스타트업이나 IT 업계 소식에 민감하지 않았다면 바닥부터 시작하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 당장 어느 회사를 가고 싶은지 마음속으로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그리고? 구글과 페이스북은 너무 높아 보이니까 제외하면 아마존뿐...?
국내에서 이직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크게 모두가 아는 몇 개의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지인이 오라고 하는 회사에 지원하는 것으로 나누어지고, 즉 (1)이미 알고있음 (2)인맥 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가면 만약 독일로 가고 싶다면, 독일 회사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업계보다 잘 알기 힘들고 인맥 또한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정말 당장 지원할 수 있는 회사가 독일 아마존 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인맥 동원
해외 취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의 친구가 혹은 직장 동료가 유럽 어디로 갔다더라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해외 취업을 원했음에도 (이것은 지인들도 인정할 것이다!) 주변에 물어볼 사람 한 명 없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물어볼 사람이 있다면 가까운 경우에는 그가 다니는 회사에 추천을 부탁할 수도 있고, 그 나라의 괜찮고 뜨고 있는 회사 같은 현지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있고 책을 읽더라도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분명 있고, 매체는 판매성을 높이려고 부정적인 정보를 모두 제거했을 가능성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을 예로 들면, 한국에서 북유럽 국가에 대한 관심은 복지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 외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다. 복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강요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조언을 구할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많이 보냈다. 해외 취업에 대해 블로그를 쓰는 사람은 물론이고 대학교 졸업생들 커뮤니티에서 미국에 가있는 선배님들의 연락처도 찾아보았다. 친구의 친구의 연락처를 받기도 했다. 이 분들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내 어떻게 미국으로 가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지금 이런 이런 상태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점은 있는지 등 꽤 공격적으로 의견을 긁어모았다. 그때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할 때라 이메일에 물어보는 내용이 대답하기 애매할 수도 있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꽤 많은 분들에게 답장을 받았다. 한 선배님은 이메일로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며 직접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검색하기
회사를 검색할 때는 linkedin과 glassdoor는 기본이다. 탑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이미 전 세계에 오피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회사들도 linkedin에 팔로잉하고 계속 눈여겨보았다. 공고를 볼 수 있는 루트는 크게 회사 홈페이지, linkedin과 glassdoor 세 개인데, 서로 다른 공고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며 어떤 플랫폼이 가장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많은 회사는 linkedin에 공고가 올라오더라도 회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지원해야 하므로 회사 홈페이지를 가장 정확한 것으로 생각했다.
linkedin은 꽤 괜찮은 개인화 추천을 해주지만 작은 회사를 걸렀던 나에게는 좀처럼 지원할만한 회사 리스트가 업데이트 되질 않았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조건 중에 '(3)함수형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회사'를 만족시키는 곳을 찾기 위해 github에서 함수형 언어로 트렌드를 보고 검색도 하면서 해당 언어로 오픈소스를 가지고 있는 회사를 직접 찾았다. 또는 관심 있는 분야에 블로그 포스팅을 올렸던 회사를 'XX developer blog'로도 찾을 수 있다.
요즘에는 slack이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커뮤니티가 이루어지는데 개발자, 해외 취업 또는 스터디 채널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정보 교류도 빠르다. 알음알음 초대가 이루어지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인터뷰 문제나 피드백처럼 공개적으로 공유하기 힘든 정보를 볼 수 있다는 폐쇄성의 장점도 있으므로 기회가 되는대로 가입해두면 유용하다. 또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이메일 답장을 받은 것처럼 현지 사정에 좀 더 밝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정말 찾기 어렵고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면 직접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소수라도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으로 꾸준한 자극을 받을 수 있고, 운이 좋다면 정말 좋은 인연이 될 것이다.
지금 회사의 서비스는 한국에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회사 이름은 작년에 해외 개발자 컨퍼런스에 갔을 때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처음 알았다. 컨퍼런스에서 수많은 회사 이름을 보았지만 로고가 한눈에 박혀서 기억에 남아있었다. 티셔츠 마케팅이 나한테 통했기 때문에 회사 티셔츠는 정말 신경 써서 멋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ㅋㅋ 그리고 나중에 github에서 스칼라 오픈소스를 가지고 있는 회사를 검색하다가 다시 마주쳐서 지원까지 이어졌다.
가고 싶은 회사의 조건을 정해 보는 일에는 덧붙이고 싶은 말이 많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모호한 생각은 고민이나 후회로 금방 흩어져버린다. 정확하게 알아야 목표에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때때로 흔들리는 나를 붙잡고 남도 설득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근본적인 ‘왜’에 답이 있어야 비로소 '어떻게'에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왜 해외 취업을 원하는지 알아야 이직할 회사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이해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어떤 회사에 가고 싶은지 추릴 수 있다. 모든 선택은 장단점이 있고 해외 취업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얻을 수 있는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 중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돈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면 한국에 남는 것이 좋다.
이런 면에서 나는 왜 해외 취업을 원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는데 정말 정말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정말 원하는(것 같은)데 진도가 안 나가서 답답하고 미적지근한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이유를 찾는데 몇 년의 경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발견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첫 번째 인터뷰에 대해 썼는데 그것은 운 좋게 실행하는 척했을 뿐, 그때는 별로 간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일을 더 하면서 구체적인 이유들이 보이자 한 시간이라도 더 일찍 일어날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다시 다짐한다. 나를 정확히 이해하고 선택의 기준을 보편적임에 양보하지 말고 남들이 좋다는 것들로 나를 설득시키지 말자고. 어쩌면 이런 긴 글을 쓰는 것도 그 과정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18th August 2018
#스웨덴 #개발자 #해외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