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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Mar 28. 2021

2021년 4월 1일, 을 기다리는

그냥 신세 한탄일 수도

가볍게 자주 블로그를 쓰자는 지난 다짐이 무색하게 2021년 1분기가 끝나갈 때 즈음 두 번째 글을 시작한다. 어제 내 블로그를 읽고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랫동안 새 글을 올리지 않은 것에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고민을 자꾸 해서 삶이 답이 없어지는 건지, 삶이 답답해서 답이 없는 고민만 하게 되는 것인지. 딱 해야 할 일만을 하고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하며 꾸역꾸역 살았다는 느낌이 드는 지난 몇 달이었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 사건이 있었고 스포티파이가 한국에 런칭했으며 연봉 협상을 하고 작년 연말 정산을 했다. 먹고 사는게 버겁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다.


하물며 일은 지난 분기부터 지금까지 고구마 100개 먹은 상태가 계속되면서 가히 최악의 기간이라고 평가할만하다.

이 이야기는 조만간 자세히 풀겠지만, 우리 팀이 꼭 해야 하는 일이 없다는 게 이 엉망진창의 시작인 것 같다. 그래서 좋은 말로 하면 여유가 생기고 솔직하게 말하면 어려운 업무가 없어서, 그동안 해왔던 실습적 업무들을 팀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 넘기고, 나는 서비스 다음 버전을 디자인하면서 다른 팀을 겸업하는 나름대로 변화를 꾀했는데 둘 중 어떤 것도 외부적 내부적 이유로 내 욕심껏 굴러가지 않는 게 현재 상황이다.

인생의 모든 부분에 상승과 하강이 반복된다지만 지금의 하강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내가 외국에까지 나와서 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데에 기인한다.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먹고싶은거 다 먹고 보고싶은 사람 다 만나면서 살았을텐데 편안함을 박차고 나온 만큼의 대가랄까 성과가 없는 게 힘든 거다. 동시에 문제를 혼자서 부술 수 없는 벽을 실감하고. 이것은 숨 고르기일까, 아니면 진짜 모멘텀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일까. 일단 기다림을 선택했지만 우리 회사 일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속 터지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Humlegården


그래도 끈질기게 놓지 않은 것은 요가와 화분 돌보기, 덕질. 한 줌의 흙에서 일어나는 소리 없는 생명의 다이나믹은 사랑하지 않기 힘들다. 요즘 우리 집 화분들은 드디어 햇빛다운 햇빛을 보면서 새싹을 틔우는 중이다. 아끼던 유칼립투스가 겨울에 말라죽는 슬픈 이별이 있는가 하면, 룸메가 회사에 방치되었던 초록 친구를 집으로 가져왔다. 꽤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는데 그래서 길냥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보았는데, 처음 몇 달은 성장이 멈춘 것 같더니 지금은 기특하게 건강한 집냥이 화분으로 적응해서 폭풍 성장하고 있다. 또 작년에 흙에 묻어둔 아마릴리스 구근에서 작년보다 한 달이나 늦게 다시 꽃대가 올라왔다. 꽃봉오리가 아직 작은데 키만 크고 있어서 걱정이 된다. 얼른 새빨간 화려한 얼굴을 보여주길.


방탄 덕질은 쉬고 다른 아이돌을 파고 있다. 가지고 있던 굿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방탄 멤버 한 명 버전을 빼고 나머지를 스웨덴 소녀 아미들에게 쫌쫌따리 팔아서 과자값을 벌었다. 나는 방탄의 컨텐츠 소비보다 투어에 목숨을 거는 편이라 작년 캐나다 공연을 예매해두었었는데 코** 때문에 시원하게 취소되고... 방탄이 아무리 잘 나가던 말던 내 화력이 꺼져서 덕질을 쉬고 있던 중에 뉴페이스가 나타난 것!

얼마 전에 진짜 어렸을 때부터 같이 덕질하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덕질 이야기로 넘어가서 요즘에 방탄 안 보고 다른 아이돌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도 바로 그 그룹에 바로 그 멤버를 좋아한다고 하기에,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취미며 취향까지 우리 진짜 안 변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우정과 덕질은 역사가 유구하다. 수업 쉬는 시간마다 같이 좋아하는 가수 얘기하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이제 서로 인생이 많이 달라졌지만 매년 콘서트 일정이 나오면 당연하게 서로의 스케줄을 묻고 콘서트장에서 만나고. 그런 매 해 반복되는 이벤트에 꼭 같이 갈 사람이 있었다는 게 돌이켜보면 얼마나 다행이고 곰살궂은 시간이었나.

마지막으로 웃겼던 건 친구가 보기에 뉴페이스 보이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데... 아니야 완식이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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