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톡홀름에 온 뒤로 계속 수련하러 나가는 요가원에는 선생님 두 분과 어시스트와 수업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분들이 여럿 계시다(편의를 위해 이 글에서는 작은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두 선생님들 중 한 분은 아쉬탕가 요가에서 아주 유명한 여자 선생님으로 거의 25년 동안 아쉬탕가 요가를 하셨고 인도 마이솔에서 아주 높은 레벨의 authorization을 받으셨다. 또한 다른 남자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선생님이기도 하다.
스톡홀름에서 아쉬탕가 요가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고, 처음에는 여자 선생님이 수업을 거의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워크샵 때문에 요가원에서 수업을 더 이상 많이 안 하셔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초창기부터 수련하셨던 분들에게 간간히 전해 듣는 정도였다. 그 사이 가르침(?)을 받은 수련자들이 선생님이 되어서 선생님들이 전부 자리를 비울 때는 대신 수업을 하기도 하고 그중에는 자기 요가원을 차려 나가신 분도 있다.
아쉬탕가 요가 수업 방식인 마이솔은 선생님의 구령과 설명을 다 같이 따라 하는 대신 미리 정해져 있는 아사나(요가 동작) 시퀀스를 외워서 각자의 진도만큼 매일 반복하는 방식으로 요가를 가르친다. 보통 아침 6시 정도 되는 이른 아침부터 샬라를 열어두고 사람들이 편한 시간에 와서 자기 진도까지 수련을 하고 나가는데, 이 시간 동안 선생님이 매트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동작을 잡아주신다. 처음 이 광경을 본다면 사람들이 질서 없이 막 돌아다니는 것 같고 다들 다른 동작을 하고 있어서 정신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고 사람들의 숨소리와 선생님이 누군가와 간간히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빼면 사실 꽤 고요하고 집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스톡홀름의 요가원은 평일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를 두 시간씩 두 타임으로 나눠서 운영한다. 선생님이 계시는 날에는 항상 첫 타임인 6시부터 8시 수업을 하시고 두 번째 타임은 다른 작은 선생님이 맡을 때가 많다. 그래서 6시부터가 이 요가원의 메인 수련 시간이자 요가 고인물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경험이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숙련자의 경우 선생님만이 도와줄 수 있는 어려운 동작들이 있기도 하고, 선생님이 나의 수련하는 모습을 관찰할 시간을 쌓아서 내게 맞는 조언과 때로는 새로운 진도를 받으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진도를 '받는' 것 또한 마이솔의 특이한 방식인데, 시퀀스는 중간에 동작을 건너뛰거나 순서를 변경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며 나의 진도를 아는 선생님이 있는 경우 함께 상의해서 새로운 동작을 추가한다. 나는 7개월 전에 에카파다 시르사아사나를 마지막으로 받았다. 진도의 기준은 지금 진도를 얼마나 잘하고 다음 동작을 할 만큼 몸이 준비되었는지 등등을 보면서 personalization 된 결정을 내리는 것 같다. 이런 시스템을 따르는 것은 수련자가 매일 가는 요가원의 선생님을 믿고 그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하고, 선생님과 수련자가 서로를 관찰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선생님은 요가에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를 준다. 요가를 할 때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대신 선생님이라는 거울이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고, 거울에 비치는 내 몸을 끊임없이 재단하고 완벽하게 보이려는 목표를 벗어나 느낌에 집중하도록 가르친다. 아마 요가를 하는 표정이나 습관은 나보다 선생님이 훨씬 더 잘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또한 요가 샬라 안에서는 집중을 깨지 않도록 '무언의 긍정'이 깔려있는데, 그래서 선생님이 오래도록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는다면 교정이 필요 없으니 지금대로 계속하라는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물론 별다른 말이 없어도 선생님의 시선은 그 자체로 압박이 된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척 딴짓하다가 선생님이 책상 옆을 지나가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 같은 일이 요가매트 위에서도 있다! 나는 아사나 사이사이에 반복하는 빈야사에서 몸을 들고 뒤로 점프하는 동작들이 힘들어서 힘이 빠지면 빈야사를 쉬운 버전으로 바꿔서 하고는 한다. 그런데 가까이에 선생님이 계시면 쉬운 버전으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떻게든 아랫배에 힘을 빡 주고 (선생님이 다시 멀리로 가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보게 된다.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앞이 가로막힌 것 같은 상황에서 또 여러 선택 앞에서 조언을 구할 기회를 얼마나 원했었나. 나를 잘 알고 인간적으로 신뢰하며 구구절절하게 배경 설명하지 않아도 척 하면 착 하고 말을 알아듣는 관계는 다수의 주변인들 중에서 손꼽히는 초특급 럭셔리라서, 사회에서는 이런 커넥션을 원하는 사람들이 멘토라는 존재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옳은 길을 미리 아는 사람이 있으면 평가와 선택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확인받는 것은 집중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으로 온전히 돌려놓는 엄청난 자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요가 말고 많은 것들을 돈을 내고 배웠지만 신기하게 요가만큼은 어릴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바라보았던 마음으로 요가 선생님을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다른 운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친구가 요가는 라이프스타일과 닿아있고 헌신적인 느낌이 있어서 스승이라는 개념이 강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가가 단순히 명상이 아니어도 몸을 쓸 때조차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기 때문인지, 요가를 하면 할수록 나 자체가 많이 바뀌고 그것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지는 것 같다. 나야 요가를 시작한 지 몇 년 안 되었고 이렇게 혼자 심각한 척하다가 내일 갑자기 그만두어도 아무도 놀라지 않겠지만, 이런 과정을 체화시키는 삶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기에 깃든 노력은 헌신이 아닌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요가를 하는 모두가 삶을 헌신할 필요는 없다)
(출처 Daily Cup of Yoga)
선생님들은 두 시간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그날의 수련을 하거나, 맡은 수업이 없는 날에는 수련만 하러 요가원에 나오시기도 한다.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이렇게 한다. 여자 선생님의 경우 우리 요가원에서는 수업을 많이 안 하셔서 가끔 평일 중 이틀 첫 타임을 하고 다음 선생님과 교대한 뒤 8시부터 수련을 하거나, 나머지 날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6시 즈음 나와서 수련만 하고 가신다. 그래서 선생님 바로 옆이나 뒤에서 수련을 하는 날도 있고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이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잡힐 때가 많다.
선생님들의 수련을 보면 우선 그들의 꾸준함에 감탄하고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라고 인정하면서, 결국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모두 어려워하는 동작에서 시간을 쓰고 때로 윽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진다. 오래 요가를 한 사람들은 멀리서 보면 한결같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하는 것 같아도 바로 옆에서 보면 숨이 유난히 거친 날도 있고 어딘가를 부여잡고 힘들어하는 날이 있다. 중력을 거스르듯 가벼운 동작이 만들어지기까지 무수히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을 것이고, 나비 같은 움직임은 진짜 힘을 쓰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애쓰는 과정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련되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이것을 알고 있어도, 오직 나비처럼 우아하기만 한 결과를 보는 것과 얼굴에 흐르는 땀을 직접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저 사람은 타고나길 유연하니까. 어깨가 곧고 힘이 좋으니까. 어릴 때부터 요가를 했으니까. 타고난 것들은 무시 못하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확인하면, 타고난 것이 많지 않은 나의 수련 여정에도 꾸준함 끝에 의미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다독이며 내일도 선생님이 수련하러 나오실 테니 나도 꼭 나오겠다고 약속을 하게 된다.
처음에 여자 선생님 옆에서 수련을 하던 날에는 왜 그렇게 긴장이 되던지. 선생님은 그냥 옆에서 요가를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나 혼자 다르게 느끼는 무게감이 있었던 것 같다. 여자 선생님과 같은 공간에서 수련하는 날들은 내가 요가를 생각하는 방식과 심지어 내 직업을 바라보는 시야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대단한 경험이었다.
사실 선생님의 수련을 자주 보게 된 데에는 팬데믹의 공(?)이 컸다. 팬데믹 전에는 요가원에서 거의 마주치기 힘들었는데, 규제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워크샵을 열기 힘들게 되자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하시고 다른 날에는 수련을 하러 나오시던 기간이 꽤 길었다. 이때 워크샵을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선생님과 수련하고 진도를 받으면서, 팬데믹 자체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요가에서만큼은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또한 팬데믹을 지나면서 당장 내일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 때마다 나를 잡아준 원동력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굉장히 차분하고 엄청나게 집중하는 상태가 옆에 매트를 깔고 있는 나에게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20년 넘게 매일같이 했을 기본적인 동작인데도 내가 본 누구보다 정성스러워 보이는 것이 가장 기억난다. 이건 요가를 단지 천천히 한다는 뜻이 아니라 몸이 유연하면서 동시에 힘이 있는, 언뜻 서로 반대에 있는 것 같은 것들이 서로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선생님이 카포타사나를 잡아주면서 처음-중간-마지막 전부 집중하라고 하셨었는데, 딱 그 말대로 아사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에 균등하게 성실한 수련이었다.
우연히 특정 후굴 동작 구간에서 시간을 많이 쓰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뒤로 스트레칭을 할 때도 있고 동작이 끝나고 한참 가만히 앉아계실 때도 있었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처럼 교과서 같은 요가를 하는 사람도 몸에 모든 부분이 마냥 기름칠한 듯 부드럽지는 않은가 보다. 역시 모두가 몸에 약한 부분이 있겠지. 다른 점이라면 어떻게 연약함과 공생하느냐의 차이이지 않을까. 피하기 시작하면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성스러운 모습을 본 날이면 요가원에서 회사로 걸어가는 길에 내가 일하는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얼마만큼의 마음을 쏟아가며 일하고 있을까? 나는 무딘 연장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칼을 벼리듯 날카로워지고 정교해지고 있나? 과연 내 인생에 20년 넘게 매일같이 수련할 가치가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따위를. 수련하는 선생님의 표정을 보면, 직업이 내게 돈벌이 이상의 가치라고 떠들었던 말들에 진정성이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개발자라는 직업에서 좇으려 했던 순수한 가치에 과연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 선생님의 수련은 내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계속 되새기는 영감이 된다.
인생에 걸쳐 아주 오랫동안 무언가를 연마하는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수련은 계속되는 성취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과정인 것 같다. 여기서 자아성찰 같은 대단한 것들을 빼고 체력만 생각해봐도, 30대가 되면서 슬며시 떨어지는 체력이나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하는 몸으로 운동을 하려면 항상 컨디션을 잘 관찰하고 자극적인 것들에서 멀어져야 한다고 깨닫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쉬탕가는 주 6일, 새벽 6시부터 수련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6일은 꿈도 못 꾸고 5일 수련을 지키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인 데다 5일을 채우려면 요가를 하지 않는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하더라. 규칙적으로 먹고 자지 않으면 매일 수련을 이어갈 모멘텀을 체력적으로 유지할 수 없고, 회사 업무로 조금 늦게 자면 다음날 귀신같이 눈이 안 떠지거나 툭하면 어깨에 무리가 와서 하루 건너뛰는 날도 있다.
마이솔을 막 시작했을 때 다른 선생님께 6일 수련하는 것이 힘들다고 했을 때 'I hear you'라면서 아주 오랫동안 요가를 한 여자 선생님도 똑같이 느낀다고 말해주신 적이 있다. 아주 짧은 대답이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25살을 더 먹으면서 매일같이 요가를 하는 일은 노화의 법칙을 거스르는 로봇이 아닌 이상 누구에게나 쉬울 리 없다.
남자 선생님 또한 여자 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는 날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수련을 하시는데, 카란다바사나에서 카운트를 다 못 채우고 내려와서 여자 선생님이 한 마디 하시자 힘들다며 대꾸를 하는 수업할 때와는 다른 연약한 목소리가 여느 수련자들이 그들의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모습과 다름이 없다. 언젠가는 문 바로 옆에서 수련을 하시다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는지 짜증을 팍 내면서 나가셨던 적도 있다.
요가를 막 시작했을 때 선생님은 모든 동작을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처럼 완벽하게 하고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성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톡홀름 요가원을 다니는 동안 남자 선생님께 대부분의 진도를 받았는데, 한 분의 선생님께 오래 배우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나름 어려운 동작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놀랍게도 내가 선생님보다 잘하는 동작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나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실 내가 선생님이었다면 매일같이 가르치는 사람들 앞에서 매트를 펴기 두려웠을 것 같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 같아서. 하지만 그는 'Every teacher struggles a lot' 라며 시간이 될 때마다 배우는 사람으로 돌아간다. 이것 또한 요가 선생님이 겪는 내려놓는 과정의 일부일까.
남자 선생님께 요가 말고도 고마웠던 순간들이 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 중에 내 한국 이름을 듣고 한 번에 외워서 부르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 선생님이 그중에 한 명인 것부터, 요가원에서 나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치면 꽉 안아주면서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말해주는 아침 인사까지. 스웨덴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 한 팔을 등에 둘러 가볍게 안아주곤 하는데 선생님은 유독 스웨덴 친구가 아니라 한국에 계신 아빠처럼 누구보다 애정을 담아 인사를 해주셔서 내가 이 나라에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의미 있는 커넥션을 가지고 있다는 안정감을 들곤 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나를 계속 요가원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이유 없이 힘에 부쳐 며칠 쉬면 신기하게 나의 마음이 요가원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꼭 요가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어도 마음이 그 공간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마지못해 나가다 보니 여즉 그만 두지를 못했다.
부끄럽지만 나도 회사에서 가르치는 일을 가끔 하고,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실수를 함께 바로잡아주는 데에 업무의 많은 시간을 쓴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니는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그동안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인턴을 했던 친구가 벌써 2년 차가 되고 누군가는 승진을 하는 등 사람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대부분의 습득은 그들 스스로 때가 되면 알아서 해내고, 외부에서 강제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양은 지극히 제한된 것 같다. 개인적 통계에 따르면 대화하는 두 사람의 지식의 격차가 너무 크면 한 명이 쏟아내는 정보의 절반 이상은 상대방에게 흡수가 안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가히 폭력적인 대화가 회사에서 종종 반복되는데,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우수함에 취하고 듣는 사람은 그를 멈출 줄을 모르거나 그 순간만큼은 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 좋은 선생님이었던 선배들은 직접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가르쳐줄 것이 없다는 겸손한 태도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일하는 모습을 언제나 가감 없이 보여주고 1부터 100까지 순서를 정해주기보다 10만큼의 일을 혼자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확인하고 다음에는 20만큼을 시켰다.
나보다 경력이 20년 더 많은 분도 모든 에러와 장애를 한눈에 보면 척척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의 논리와 경험으로 침착하게 정답에 가까워져 간다. 그분들께 배운 것 중 개발을 하면서 혼자 시도하고 - 실패하고 - 공부하고 - 고치는 순환을 반복하는 능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면서 이런 사이클을 여러 번 도는데,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이클을 통제할 줄 아는 것 같다. 그리고 유연하며 겸손하게 늘 상황 속에서 스스로 배운다.
요가에는 세 가지 종류의 선생님이 있다고 한다. 선생님, 수련 그 자체, 그리고 나 자신.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은 나머지 두 선생님, 수련과 나 사이에 채널을 발견하도록 도와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채널이 단단해질수록 요가가 저절로 내게 깊이 파고드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선생님들의 인생에 오래오래 전부터 그러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