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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Aug 01. 2022

Summer Blues

북유럽에서 여름나기

팬데믹을 탈출하고 첫 번째 여름을 맞는 스톡홀름은 7월부터 시내가 눈에 띄게 비었다. 모두가 그간 해소하지 못했던 여행벽을 해결하러 떠난 것 같다. 날씨가 좋은 날에 나가보면, 수영을 하는 아이들이 늘 모여있던 물가나 쇼핑백을 든 사람들로 붐비던 큰 백화점 앞 공원, 버스와 지하철 모두 한산하다. 회사는 말할 것도 없이 비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줄다 보니 회사에 다른 부분들도 여름 휴식을 갖는다. 카페테리아에 채워지는 아침 샌드위치 양이 절반으로 줄었고, 매 층마다 있는 커피머신의 전원이 당분간 꺼지고 회사의 바리스타분들의 영업시간도 줄었다.


대 인구 이동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스웨덴 알란다 공항은 심지어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몰려오는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체크인과 보안검사에 걸리는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졌다. 정말 역대급 기다림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었는데 5월 말에는 오로지 보안검사만 두 시간 기다렸고, 7월 초에는 공항에서 보안검사는 해결한 듯했으나 SAS 항공사 파업으로 체크인이 터무니없이 오래 걸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Fast track을 사서 빨리 이 줄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이 악명 높은 운영 문제는 입소문을 빠르게 타고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공항 바깥까지 줄을 서는 웃지 못할 뉴스를 만들어내다가, 비행기 이륙 3시간 전부터 공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사람들을 통제하고서부터 약간 해소가 된 것 같다. 공지에는 ‘staffing problems’라고 하는데, 팬데믹에 공항과 항공사가 대규모 해고를 했다가 이전처럼 고용상태를 되돌리지 않은(혹은 재정 문제로 하지 못하거나) 문제라고들 사람들은 말한다.



스웨덴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여름을 기다린다.

해가 짧은 겨울을 보내고 나면 자연법칙적으로 당연할지도 모른다. 배가 고프고 잠이 오는 것처럼 몸은 그동안 충분하지 못했던 햇빛을 원하니까. 여기에 사는 모두가 해가 나면 밖에 앉아 태양 쪽으로 45도 정도 턱을 들고 눈을 감고 해를 음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서 그 자신도 저절로 똑같은 행동을 한다.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점심시간에는 꼭 다 같이 야외 테이블로 나간다. 우리나라와 다른 이 문화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직을 했던 첫 해에는 점심을 먹으려고 밖에 둘러앉았는데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척 꺼내는 모습이 약간 문화충격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을 쳐다보며 ...회사인데 선글라스가 갑자기 왜 나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햇빛 때문에 부러워하는 줄 알고 뿌듯하게 씩 웃던 그 얼굴. 대낮에 레스토랑 야외석에 앉아있는 손님처럼 밖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주머니에 야무지게 넣어오는 것이 웃기고 귀엽기도 하고. 나는 이제 충격 수준은 지났으나 여즉 회사 점심시간에 선글라스를 챙길 정도로 스웨덴화 되지는 못했다.


회사 루프탑은 (특히 여름에) 모두가 사랑하는 공간이라서 우리 부서가 다른 오피스로 옮기네마네 할 때 새 건물에 루프탑이나 지금처럼 밖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느냐는 이야기를 서로 하곤 했다. 그 건물은 창문에 돌출부가 없고 옥상이 막힌 구조라서 지금 건물의 탁 트인 루프탑에 앉아 다들 안타까워했던. 하지만 새 건물로 이사 가지 않기로 결정이 나서 모두의 사랑 루프탑을 사수할 수 있었다.

스웨덴에는 째깐한 집에도 발코니가 달려있는 건물이 많은데 아마 같은 이유에서 만들어진 스타일이 아닐까 한다. 정말 발코니'만' 있는 집도 있고 삼면을 여닫을 수 있는 통유리 창으로 막은 집도 있는데 그 유리 시공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한다. 솔직히 1년 중에 발코니에 나가 앉아있을 만한 날이 많지 않아서 가성비를 따지면 이 나라에는 순정 발코니가 없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단한 햇빛 쬐기 사랑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겠지.

집 발코니에 앉아서 선글라스를 끼고 회의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이 재택근무로 달라진 것 중 하나였다. 선글라스가 필요한 날씨에 노트북을 들고 밖에 한 시간을 앉아있으면 분명 맥북이 지글지글 끓으면서 팬 돌아가는 소리가 엄청날 텐데 꿋꿋하게 앉아있는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매년 여름이 온다!!! 고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하면 덩달아 들뜨면서도 왜 들뜨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뒤섞인 기분이 든다. 밝아지고 따뜻해지니까 좋긴 한데 이런 날씨 변화에 동물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이 매번 낯설고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것 같다. 계절에 상관없이 밖이 밝던 어둡던 항상 인공적인 빛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채광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티 나게 들뜨는 몸과 마음이 신기하기만 하고 또 겨울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몸이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구나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며칠 구름이 끼다가 해가 나면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곤 했지만, 그냥 흐린 날씨와 해가 짧게 떠있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는지 몸과 마음이 햇빛으로 받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큰 듯하다.


그리고 북유럽 여름의 하루 종일 지지 않는 해, Midnight Sun은 막상 겪어보면 꽤 많은 유지보수가 든다. 침실에 암막커튼이나 좋은 블라인드가 필수. 창문을 열어놔서 어쩔 수 없이 빛이 들어오는 경우를 대비해서 항상 수면안대를 침대 맡에 둔다. 나는 보통 5시 전후로 일어나서 밤 10시 전에 자는데 해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면 빛에 도통 적응을 못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밖이 조금씩 어두워져야 자연스럽게 잘 시간이라고 인지하는데 9시가 되어도 낮처럼 환하니까 일부러 계속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재밌는 것은 겨울에 해가 짧아서 몸이 영향을 받는 것처럼 여름에 해가 길기 때문에 받는 영향도 있다는 거다. 나처럼 눕자마자 잠들 수 없는 사람에게 10시가 되면 암막커튼을 전부 치고 방을 깜깜하게 만들고 누우면 바로 잠들고 그런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잠들기 전에 몸이 깜깜함 속으로 천천히 녹아들어서 자연스럽게 잠이 들 수 있도록 매일 밤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여름은 무작정 아름다울 필요도 없고 최고로 즐거울 필요도 없다. 그냥 사계절 중 하나일 뿐인데 덩달아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이 시간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휩쓸리는 기분이 든다. 시간이 될 때마다 바깥에서 피부를 태우고, 여행을 최대한 많이 다니고, 긴 휴가를 쓰고, 밖에서 바비큐를 하고. 그리고 행복과 만족으로 가득 차서 올해 여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해야 할 것 같은.

강제로 주입된 '여름 사랑'은 내 속에서 겉돌다가 결국 우울감으로 변질되는 것 같다. 날씨가 좋은 날에 텅 빈 공원을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다 떠난 자리를 쓸쓸하게 돌아보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던가. 눈에 띄게 회사에 사람들이 없는 날에는 나는 누구이고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거나. 별다른 할 일이 없어서, 남들만큼 멋진 계획이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건 주입 학습의 폐해다. 그리고 유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뒤처지는 것이 싫지만 유행에 합류하기도 싫은 양가감정이다. 유럽이 전반적으로 겨울에 해가 짧기 때문에 어디에나 여름 덕후가 많은 것이 이해가 가고 나 또한 햇빛이 반갑지만 덕질을 하기에는 논란이 많아서 머글과 덕후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할 뿐인데, 여름 덕후들이 하도 판을 치고 다니니까 여름이 별로라거나 겨울이 더 낫다는 말을 함부로 꺼냈다가는 '해를 즐기지 못하고 실내에만 박혀있는 음침한 애'라며 싸불을 당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는... 거 아닌가. 아아, 역시 대세를 거스르는 힙스터의 길은 외로운 법이다.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땅굴을 팔 이유가 전혀 없다. 스웨덴은 원래 인구가 적고 공원은 1년 365일 항상 붐비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인구가 스웨덴의 다섯 배일 뿐만 아니라 1 Km2당 인구는 무려 21배다 [1].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여행을 떠났건 아이들의 여름방학에 맞춰 쉴 수밖에 없는 것과 달리 나는 계획에 유동적이니까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관광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자아성찰을 할 것이 아니라 한가하면 일찍 업무를 끝내고 쉬면 되고. 잘 자라는 화분들을 돌보면서 뿌듯해하기만 해도 부족한 시간인데.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연고가 없는 곳에 사는 외노자의 상황도 문제가 된다. 여기서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만들지 않는 이상 1 tier 인간관계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근본적인 공허함이 은연중에 있는데 여름이 되면 그게 평소보다 심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대단한 계획 없이 그저 오랜만에 얼굴을 보려고 며칠 가있을 가족의 집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내 생활에 중요한 부분이었더라. 부모님과 친척들은 전라도에 나는 경기도에 오빠와 새언니는 인천에 살았는데, 정말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을 볼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날짜를 잡아서 가방을 싸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꽤 먼 거리를 오가던 시간들이 전부 여행이 아닌 여행이었나 보다.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한 번씩 가족의 집으로 주말여행을 떠나 잔뜩 챙겨주신 것들로 배는 무거워진 짐을 가지고 돌아오곤 하던 일들이, 가족끼리 휴가를 보내러 사람들이 뭉텅이로 떠난 기간에 더 자주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러니 아무리 해가 하루 종일 뜨고 하늘이 파랗다한들 여름은 최고의 계절일  없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헛헛하고 어수선한 마음으로 여름에 지나치게 들뜬 사람들을 신기한 듯 쳐다볼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여기서는 팥빙수와 냉면을 마음대로 먹을  없는데 그것을 과연 여름이라고 부를만한가.




[1] Worldmeter, 2022년 7월 27일 통계

* 대한민국 인구 51,360,311

* The population density in South Korea is 527 per Km2 (1,366 people per mi2).

* 스웨덴 인구 10,230,957

* The population density in Sweden is 25 per Km2 (64 people per m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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