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하러 인도에 간 개발자
지금은 밤 열두 시 사십 분이다. 이따 네 시에 공항에 가는 택시를 타야 하는데 누워있어도 잠이 안 와서 그냥 일어나 있다. 커피를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다.
블로그를 그냥 열어둔 지 거의 일 년이 되었다. 가끔 잘 읽었다는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뭐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거의 육 개월 만에 정말 뭐라도 써본다. 얼마 전에는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분이 나와의 대화가 도움이 되었다며 취업을 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는데, 그 분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정말 정말 정말 블로그를 손 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글은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요즘 더 잘 쓰니까 (?) 마음 따땃해지는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이런 걸로 감사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따 공항에 가야 하는 것은 오늘 인도 마이솔에 두 달간 요가 수련을 하러 가기 위해서다.
스웨덴에 와서 마이솔을 시작한 지 어느덧 5.5년이 되었고 그전에 한국에서 다니던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7년이 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7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느낌에 비해서 진도는 많이 못 나간 수련자다. 그래도 요가는 외국 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내 안의 빛 같은 것이라고 늘 생각하기 때문에, 아쉬탕가를 수련하면서 마이솔을 언젠가는 가보고 싶었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것의 근본이 늘 궁금했기 때문이다.
올해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 그 언젠가라는 느낌이 왔다. 이것은 내가 마이솔에 가기에 충분한 요가를 하기 때문은 아니다. 작년 말에 다친 어깨를 치료하고, 치료와 수련을 함께 하고, 아파서 한동안 하지 못했던 동작들을 다시 만들면서 올해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이 ‘이 정도면 오래 고민했다, 마이솔에 가자.’라는 결심이 되었다.
내가 신청한 기간에 사람이 많이 몰려서 못 갈 뻔했지만 운이 좋게 여름에 마이솔에서 컨펌 메일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여태 회사를 다니면서 최악 중의 최악의 시간이었다. 우리 팀에 일어난 상황을 논리적,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울었다가 초연해졌다가 갑자기 화가 나서 제정신이 아니었다(마지막에 썼던 정리해고 때문은 아님. 회사는 안 짤렸어요). 이때만큼 전부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또 있었을까!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고 어떨 때는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팀 사람들이 전부 번아웃이 왔는데 나 혼자 거의 두 달을 휴가 내기가 정말 미안했지만, 내 일정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결정되었고 감사하게도 팀 사람들이 정말 축하해 주면서 자기들도 같이 긴장/떨리는 상태로 인도 여행을 기다려주었다. 가는 건 난데 도대체 왜 긴장하는 건데 ㅋㅋㅋㅋ 어이가 없었는데… 나 같은 경우가 테크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흔하지 않으니까 신기했던 것 같다. 잘 다녀오라고 카드를 만들어줬는데 너무 고마웠고, 동료 한 명이 ChatGPT에 준비할 것을 물어본 것도 너무 웃겼다.
이렇게 극적인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일은 망했지만 그 와중에 또 다른 미션을 위해 떠나게 될 줄은. 아니면 올해 가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내 육감이 이런 일을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인도에서 마냥 휴가를 쓰고 요가만 하러 다니는 것은 아니다. 쓰고 있는 책의 원고를 끝내야 하는 미션이 하나 더 있다. 요가 열심히 하고… 나머지 시간에 원고를 정말 열심히 써야 하고… 그렇게 두 달 보내고 스웨덴에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다음 글은 인도에서.
27 Nov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