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쯤이었다. 아이가 임용고시를 패스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발령을 기다리며 생애 가장 여유롭고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이미, 발령 적체가 심하다는 장학사의 언질이 있었기에 아직 한참은 남았겠거니 하고,
아이는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계획을 탄탄히세우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나는 내심 호주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산불을 핑계로조금 더 내 옆에 머물러 주었으면 했고. 슬~슬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이 속 좁은 엄마의 바람을 얘기하려는 찰나,
예상을 뒤엎고 조기 발령이 났고, 뒤 이어 분지를 참혹함으로 몰고 간 ’ 코로나 19‘ 사태가 제대로 시작을 알렸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아니 폭탄이 제대로 터진 격이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도 마스크를 절대 벗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엔 확진 자가 거의 없던 터라, KF94 마스크를 카페에서조차 끼고 있는 우리 모녀의 모습을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말을 하면 혹시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올까 조심조심 ‘예’ 나 ‘아니오.’의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내 모습은 어느새 초라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도 수 백 명씩 무섭게 쏟아지는 확진 자들로 해서 마치 그 지역 출신들은 이유 불문!바이러스 보균자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질 때였으니 말이다.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가 번갯불에 콩을 볶고,
연탄불에 김을 굽듯 급히 거처를 구하고,
이사를 해 주면서 나는 이토록 처음으로
‘대구에 사는 사람’ 이란 사실이 참담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우선, 아이가 얻은 집의 소유주는 80대 할머니였는데 우리가 대구사람이라 혹시라도 감염의 위험이 있을까 무서워 직접 ‘계약서’를 쓰지 못하겠으니 중개업자와 알아서 하라고 말씀하셨고, 아이가 발령받은 교육청에서는 ‘2주간의 잠정적 자가 격리’를 부탁해왔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일종의 명령에 가까웠다.
물론, 생애 한 번뿐이라는 발령식도 취소됐다.
어디 그뿐인가! 잠시 식료품을 사러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워 사람이 붐비는 시간은 피할 정도였으니.
4년간의 대학생활을 오직 기숙사에서만 했었기에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의 공간을 사회인답게 이모저모 멋지게 꾸며주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거의 모든 물품들을 온라인 쇼핑으로 갈무리하면서, 하루가 한 달 같은 생활로 그렇게 무려 3주를 보냈다. 아이도 나도 시작점부터 지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저 개탄할 뿐.. 아무리 궁리해 봐도 뾰족한 수는 그때도 지금도 없으니까.
그 3주 동안 내가 고향의 친지나 지인들로부터 받은 전화는오로지 한 목소리로 귀결된다. “여기는 위험하니 서울에 더 있다 내려와”
그렇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세상은 가시거리가
채 30cm도 되지 않는 짙은 안개처럼 우릴 덮쳤고 안타깝게도 그 세상은 지금, 더 가혹해진 모습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쩌면 아이와 내가 지난 2월, 거대한 폭풍 속에 외롭게 서 있는 것처럼 느꼈던 그 묵직한 공포가 눅진하게 전국을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가끔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이 이상한 세상에서, 우리는 오늘과 내일을 보내고 보내야만 한다.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만 한다.
오로지 이런 이유로, “이 노래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 해학적이고도 은유가 넘치는 가사에 집중해보는 것도 좋겠어요.”라고
많은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3주간의 비자발적 격리가 포함된 서울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어깨를 짓누르는 극단의 무서움을 잊기 위해 이 노래의 가사를 곱씹으며 듣고 또 들었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가 다니고, 하늘 위로 나는 돛 단 배가 버젓이 있는 세상, 강 태공에게 잉어 대신 참새가 잡혀도 이까짓 거!’ 라며
웃을 수 있는 세상도 있으니, ‘고마, 함 견뎌보자고!’ 삶이란 워낙에 복잡하고 아리송하며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무진의 안개 같은 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괜히 쫄지 말자고!
그렇게 주문을 외듯 김광석이 불러주는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들으며 뭉그러지려는 마음을 어르고 달랬다.
이렇듯 노래 가사는 때로 위로이기도, 갈길을 몰라 헤맬 때 친절한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더하여 삶의 고난을 추슬러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찬
동력으로, 우리를 이끈다.
오늘도 확진 자 몇 명이냐에 귀를 한껏 기울이고 잠깐 분리수거장을 가면서도 마스크를 챙기는 일상에 매몰돼 있지만, 힘내시라!
전후좌우가 뒤바뀌고 모든 것이 얽혀버린 세상 속에서도 꽃은 피고 나뭇잎은 형형 색색 물들어 가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