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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Aug 11. 2023

혹서의 저녁노을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편지, 딸에게

     

해 질 녘 서재에 앉아있다, 문득 마주하게 된 저녁노을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단다. 태양이 무자비하게 이글거릴수록 저녁노을이 더 아름다운 것이었던가? 짧은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보았지만 지금 엄마가 바라보고 있는 저 노을의 농염한 아름다움을 설명할 재간은 없어 보였지.


한동안 넋을 잃고, 등 뒤로 땀이 흐르는 줄도 모른 채 그렇게 노을이 제 빛을 잃고 어둠 속에 완전히 흡수될 때까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단다. 아침노을과는 다른 결이, 그리고 그 어느 계절과도 다른 흡인력이 이 ‘酷暑’의 저녁노을에는 있는 듯했어.


그것이 무엇이냐? 누군가 따져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당신도 고요한 어느 시간, 내가 봤던 그 노을을 한 번

마주해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은 맘, 우리 딸은 알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저녁노을이 성큼성큼 엄마의 가슴속으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바로 그때부터가 인간적으로 자신을 성찰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태양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그렇게 저녁노을을 길~게 끌고 지구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시간이어서,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어쩌면 자연의 모든 것들이 내일에도 지속될 것이란 약속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그래서 저녁노을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읽어낸다 늘.

오늘의 뜨거운 노을도 하여, 미치도록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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