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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Dec 17. 2021

‘제사’라는 형식 앞에서 합리성은 무용지물이 되지

편지, 딸에게

결혼하던 그 해, 엄마는 얼굴도 한 번 뵌 적 없는 시할아버지의 첫제사 준비를 해야만 했지. 대대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엄마지만 결혼이라는 선택으로 생전 지내보지도 않은 제사를 위한 음식을 하는 일은, 이제 와서야 하는 말인데, 눈물 나도록 힘들었단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결혼한 지 겨우 두 달밖에 안된 새 며느리에게

이것저것 무차별적으로 시키셨고.(아마 며느리를 봤으니 덕을 보고 싶으셨겠지!) 특히 돌아가신 이후 처음 올리는 제사는 ‘큰제사’라고 해서 집안의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거니 손님만도 수 십 명이나 됐지. 엄마는 그때도 그저 ‘넌 친정에서 그것도 안 배워서 시집왔냐?’라는 아주 일방적이고도 비합리적인 질타를 받기 싫어서, 힘들지만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을 했단다.


‘왜’라는 질문은 통용될 거 같지도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 묵시적으로 양반이라 자칭하는 집안의 가풍은 엄마의 생각보다 엄격했기에 말이다.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생각과 진보적인 사상으로 앞서 나가는 여성이라 믿어왔던 엄마의 신념은 그 해, 첫제사에서 일시에 무너져버리더구나. 물론 각 가정의 가풍이 다르고 지켜온 풍습이 판이 하기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결혼으로 인해 일시에 다른 풍경 속으로 들어오게 된 며느리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


왜 이런 상차림을 하는지, 제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내야 하는지 누구 하나 설명해 주지도 않고, 그저 네가 시집을 왔으니 또, 장손 며느리니까 당연히 해야지!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만이 맘을 참~ 무겁게 만들더구나.

그렇게 이 집안의 장손 며느리로 살아온 지 어언 25년 오늘, 또 한 번의 제사를 지내면서 어떤 깊은 회한이 몰려오는 걸 막을 순 없었단다.


내 아버지의 추도식과 겹친 어느 제삿날엔 진짜 울면서 음식 준비를 했다는 걸, 남편을 포함한 시댁 식구 중 누구 하나라도 알아챈 사람이 있었을까? 오늘도 그저 묵묵히 ‘가 아니면 누가 하노?’라는 시어머니의 반복되는 명령어에 몸으로 굴복할 뿐이었다. 여기엔 임용고시 2차를 앞두고 있는 너의 무사통과를, 그리고 집안 조상님들이 진짜 자손들을 사랑하신다면 굽어 살피라는 기원을 담았기에 조금 더 가능한 일이었고.


뒤 설거지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길, 보름을 앞둔 달빛은 왜 그리 속절없이 교교히 흐르던지.. 맥주 한 잔에 들어줄 이 없는 푸념과 넋두리를 실어 보낼 참이다. 이렇게 또 한 번 시절은 흐르고, 그 시절 따라 자꾸만  물색없어지는 내 영혼이 너무나 안타까워 홀로 어깨 들썩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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