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거린 사이 더 빨리 흘러왔을 시간에 대하여
편지, 딸에게
며칠 전 늘 사용하고 있는 sns의 프로필을 ‘시작점을 확인하되 후회하지 않기.’로 바꿨지. 한 해의 끝자락에 오고 보면 자꾸만 되돌아볼 것들이 생겨나게 마련이어서 말이야. 어쩌면 올 한 해는 엄마에겐 참 가혹한 한 해였다고 할 수 있겠구나. 여전히 네게는 속 시원히 얘기할 수 없는 어떤 일들로 인해, 몸도 많이 축났을 뿐만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침투해 온 ‘우울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야말로 안간힘을 다 쏟았기 때문일 거야. 그렇게 세월의 등에 앉아 홀로 눈물 흘리고 있는 사이 세월은 엄마의 눈물을 달게 먹어가며 그 기운으로 더 빨리 달려온 듯하네.
이럴 땐 말이지 세월이 참 야속하기도 하지만, 일견 기특하기도 하단다. 힘든 시기엔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흐를 수도 있는 게 시간이라는 걸, 그간의 경험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올해 엄마에게 할당된 시간이란 녀석은 그런 속도를 무시하고 앞을 향해 돌진하는 것으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줬더구나.
각설하고, 너에게도 올 한 해는 참 힘들었겠지? 여전히 진행 중인 시험의 마지막 발표 일까지는 무한 반복되고 있는 촘촘한 일상으로 숨 막히기도 할 거야.
그래, 음력으로는 아직 남아 있는 올해의 시간에게 너를 위해 오늘은 아주 정중하게 부탁을 해 볼 참이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느껴지는 고통들에서 해방이 될 것인지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고 있을 때, 시간은 섣부른 위로보다는 오히려 속도를 높이는 모습으로 나를 끌어왔기에, 네게도 돌아봐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아니 오히려 고맙고 감사했다는 전언을 띄울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야. 그리고, 지난봄쯤 우연히 들른 한 가게의 주인이 무얼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아마 사람의 관상이나 기운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인 듯했어) 무심코 내뱉었던 한 마디 “ 올해 굉장히 좋은 일이 생기겠네요. 내 인생에도 이런 날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 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 모든 행운은 너와 관련된 것이기를 소망한단다.
더불어, 지나간 것들보다는 다가올 것들이 정녕 더 아름답고 고운 빛이기를 한 해의 마지막 장에 꾹꾹 눌러 적어보는 순간이네. 행복하자! 우리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