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며칠 통영 여행 중이란다.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기도 하고, 엄마가 사랑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곳이라, 도시 곳곳 그들의 흔적을 찾아 순례하기 좋기에 엄마가 자주 찾는 곳이지. 하루는 동행이 있지만 이틀 정도는 오롯이 혼자 산책하고 어슬렁거리는 시간을 가져볼 계획이고.
요즘엔 여행지에서 혼자 도시를 탐험하는 사람들을 꽤 자주 볼 수 있지만 엄마가 네 나이 때만 하더라도 혼자 여행을 꿈꾸고 그걸 실행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단다. 특히 낯선 도시에서 토박이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보내는 경계의 시선은 뭐랄까? 굉장히 날카로운 칼날처럼 여겨지기도 했지.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엄마는 어릴 때부터 그런 시선이
싫지가 않았어. 아니 오히려 즐겼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낯선 도시에서 너무나 완벽하게 ‘이방인’ 혹은 ‘他者’가 된 느낌은 홀로 여행을 떠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뜨겁고도 신선한 선물이니까. 삶의 현장에서 부대껴가며 치열하게 사는 동안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경험이지! 더군다나 단 하나의 레시피로 만든 ‘인생의 각성’이라는 음식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고.
진정한 타자가 되고 나면, 고맙게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제3의 눈도 생기더라고. 동반자가 있는 여행보다 오히려 혼자 하는 여행 쪽에 축이 많이 기울어져 있는 엄마에겐 말이야. 그리고, 평소에 잘 먹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던 일들을 꿈꾸고 실행하는 용기가 불끈, 솟아오르는 것도 혼자 하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의외의 결과이기도 하더구나.
청마 생가를 옮겨놓은 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이태 전 보았던 그것과도 무척 다른 색감이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관해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라는 절절한 고해성사로 절규했던, 시인의 목소리는 숱한 포말로 살아났다가 부서지는 영겁의 시간 속에 갇혀 있었어. 그리고 백석과 박경리, 윤이상과 전혁림, 김춘수까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길 고대하며 꽃이 돼 바닷바람에 실려 다니는 그들의 흔적을 따라 도시를 유영하는 즐거움, 다시금 통영을 찾게 되는 이유란다.
곧 메밀꽃 핀다는 기별이 봉평 으로부터 오면 효석을 만나러 홀로 분분이 길을 떠날 계획인데, 벌써부터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 귀에 아득하게 번지고, 마음은 먼저 제 앞서 길을 떠나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