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삼계탕으로 초복달임 해야 해?
편지, 딸에게
장마가 끝을 보일 무렵, 기다렸다는 듯, 더위의 기세가 몰려온 오늘은, ‘초복’ 이지? 매년 이 ‘삼복더위’가 찾아올 무렵이면 분지인 이곳은 마치 도자기 가마의 화력을 연상시키듯 달아오르지만,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삼복을 대하는 지혜로 여기며 오늘을 지나기로 한다.
어제, 동네 친구로부터 시댁 식구들이며 친정 어른들께 복날마다 삼계탕을 집에서 해서 보낸다는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단다. 물론 엄마도 집에서 삼계탕을 종종 끓이기는 한다만 한, 두 마리도 아니고 일곱 마리씩이나 집에서 끓이자면 이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거든.. 그것도 아파트라는 구조 안에서는 더더욱 힘에 부치는 일이고. 아무튼 “너 참 대단하구나!”라고 말은 했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단다.
워낙에 주변 사람들 잘 챙기는 그 친구의 성정엔 물론 박수를 보내고! 나 한 사람 힘들어서 식구들 잘 먹고
이 더운 여름, 힘내면 좋은 것이라는 마음 씀씀이에도 동의하는 바야. 하지만 삼복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해 오는 옛 방식의 ‘복달임’이라는 게, 우리가 사는 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 하게 되네. 먹을 것이 지금만큼 충분하지도 못했고, 더불어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이라고는 부채질을 하거나 산바람이 머무는 계곡이나 개울을 찾아 몸을 식히고 담그는 정도가 다~였던 시절의 풍습이니까 말이야.
그 옛날부터 복달임으로 먹었다던 ‘삼계탕, 개장국, 혹은 팥죽’까지 굳이 ‘藥食同原’을 들지 않아도 몸에 좋은 음식임엔 분명해. 그런데, 몇 백 년 전의 풍습을 환경과 문화가 완전히 바뀐 지금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시키고, 이를 따르지 않는 걸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네.
마트에 가 보니 워낙 ‘1인 가정’ 이 많아져서 그런가, ‘레토로르 식품’으로 나온 1인용 반계 탕이나 삼계탕도
굉장히 다양하더구나. 몇 세기 전의 어머님들이 장작불을 때, 매운 연기를 마셔가며 뭉근히 끓여낸 삼계탕에 버금갈 바는 아니겠지만 뭐, 바쁘고 힘든 현대인들에게 나름 괜찮은 방법일 것도 같고. 해마다, 또 이런 시절 절기가 돌아올 때마다 계속 고민하고 의문을 품는 엄마도, 네가 있는 초복이라면 기꺼이 땀 흘려가며 삼계탕을 끓였을지도 모를 일이지.
하지만 풍습도 문화도 거기에 담긴 정신은 계승하되, 지키는 모양새는 좀 바뀌어가도 괜찮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단다. 초복 날, 아침부터 작열하는 태양과의 ‘맞짱 뜨기’ 만으로도 힘겨운 하루가 될 거 같구나. 엄마는 책 한 권 챙겨서 시원~한 카페로 ‘초복 달임’ 떠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