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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Oct 20. 2021

모든 것들이 변해가지만...그래도

편지, 딸에게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변한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문득 오늘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단다.사실 이렇게 철학적인 ‘테제’로 일상을 시작할 만큼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야.다만 주변의 어느 어르신이 수술을 받으시고는 후유증인지 모를 ‘섬망’ 으로 꽤나 고생하신다는 얘길 들어서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수술 전에 이미 인지장애를 보이신다고 하셔서 걱정은 했다만 그 정도가 좀 심하시다 하는구나.간호를 하는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될 소리를 하시고 역정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잠시잠깐 정신도 놓으신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노릇이지?


엄마가 기억하는 그 어른이야말로 손끝도 야무지시고, 매사 모든 일에 엽렵하셨던 분이었거든! 하기야 그게 벌써 십 수 년도 전이니 세월의 흐름에 그분도 무사하지는 못하셨을 테지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구나. 세월 따라 변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도 어쩌면 참 쓸쓸한 일이지만, 변한 모습을 주변 모든 사람은 알고 있는 데, 본인만 모른다는 건 더 안타깝고 아픈 일인 것 같다.


훗날 아주 먼~ 훗날에 이 엄마도 기억이 희미해질 수는 있을지언정,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그게 바로 나’ 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녕 사치일까? 모든 것들이 원래의 제 모습을 잃어가는 게 세상의 순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 한, 두 가지 쯤은 있지 않겠나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한단다. 이런 생각들이 잦아지면, 나이가 든 증거라고 하더라만...이런 종류의 선명한 두려움과, 때가 되면 맞서 싸워야 하는 것도 삶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혜들을 자양분 삼아 주름은 점차 늘어가도, 눈빛만은 보다 더 형형하게  새날들을 맞고 싶구나.


기나긴 밤이 이어질 것 같은 시간 위에서 엄마는, 네가 또 그립다.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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