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짐짓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어지러운 상황도 견뎌내는 힘을 주지만, 때론 가혹한 표정으로 세차게 죽비를 내려치기도 하는 건가 봅니다. 그럴 때면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들곤 하죠. 녹록지 않은 세월을 지나왔다 자신하는 제게도 몇 번 그런 순간이 다가왔고, 그중 제일 뼈아프고 각성이 됐던 하루가 도둑이 드는 것처럼 준비도 없이 다가왔었습니다.
"너, 지금 그냥 막사는 거 아냐? 일 그만뒀다고 아주, 그냥 한량처럼 사네"
누군가 제 귀에 대고 이런 말을 하는 느낌을 받았죠, '뭐지? 대체 누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자부하고 있는 내게 이런 도전장을 내미는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도 쫑긋 세운채 주변을 휘~휘 둘러봤지만 오후의 햇살은 그득하고 너무나 고요한 시간의 정적만 흐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밥벌이로 삼았던 일을 그만둔 뒤로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기 하며, 방송시간 내내 습관처럼 들이키던 스틱 커피가 아닌, 직접 내린 커피 한 잔과 함께 조용히 독서를 하는 것이 그즈음의 루틴이었거든요.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이명처럼 들리던 그 심연의 목소리에 마음이 일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두근두근 쿵쾅, 방망이질을 하듯 요동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그만두면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를 하나, 하나 정복해가면서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던 제게, 이 동요는 너무도 큰 파문을 만들어내며 소파 위에 앉아있던 제 몸을 벌떡, 일으키게 했답니다. 도저히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심장이 뛰더니 막을 새도 없이 눈에선 굵은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심장은 부풀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내 눈앞도 아득해지고 온 몸엔 전율이 일어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런 위력을 당하지 않고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태어나서 아마 이때 처음으로든 것 같습니다.
온몸이 밧줄로 칭칭 감긴 것 같은 느낌,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 두발...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짧은 지식으로 누군가의 도움, 그것도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거죠. 친구 목록에서 언젠가 평생교육원 수업을 함께 했던 분의 번호를 찾아 눌렀습니다. 부군 되시는 분이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계시다는 얘길 언뜻 들은 게 기억이 났거든요.
"저기 죄송한데 제가 지금 너무 급한 거 같아요. 찾아뵐 수 있을까요? 갑자기 호흡이 안 됩니다."
새된 목소리로 순서도 없이 제 증상을 설명하니, 얼른 오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신발도 겨우 신은 채, 택시를 타고 달려간 그곳에서 전 '불안장애'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왜 '의심된다는'이라는 단서를 붙이셨는지는 지금도 의문이 갑니다만 어쩌면 '의심된다는'이라는 단서를 말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멘털'만 놓고 따지자면 강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럽고, 눈물이 많기는 해도 항상 이성적이라는 주변의 평판이 있었기에, 의사 선생님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불안장애'란 단어가 난생처음 들어 본 타국의 언어 인양 공명을 울리며 공기 중에서 산화되는 느낌마저 들었죠.
'아, 내가 불안장애라니, 뭐 때문에?' 마음 한쪽에서는 대답을 해 줄 수 없는 질문만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게 아니겠어요.
"얘길 들어보니, '빈 둥지 증후군' 도 생기신 거 같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해 오던 일을 그만둔데 대한 공허감이나 가까운 사람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극단적으로 제어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병증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복합적이긴 하지만,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시지는 말고요"
상담 시간이 그리 길게 이어진 건 아니었지만 전문가는 역시 전문가였습니다. 제가 피력한 짧은 삶의 이력들을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로 이제부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정리를 해 주시더군요.
"하고 싶은 게, 그렇게 많은데, 왜 안 하고 사십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말하고 싶을 때 참지 말고 얘기하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 잘하는 사람' 이 되어야 된다는 강박을 버려 보세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신기하게도 이리저리 얽힌 것 같았던 심장의 혈관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숨을 한 번 크게 내 쉬어보고, 호흡도 간헐적으로나마 푸, 푸 간격을 정상적으로 하려 애썼더니 얼음장처럼 차갑던 손이 따뜻해지더군요. 중간에 경력 단절 기를 겪기는 했지만. 꽤 좋아했던 일을 20년 정도 했고, 가끔은 원수 같지만 무던한 남편도 있고, 너무 예쁘게 자라준 딸도 있는데, 나는 왜 이런 증상을 겪는 것일까? 싶었습니다. 아, 물론 사람이라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질 때도 있고, 아무런 예고 없이 숱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들이 들이닥칠 때도 있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 인생의 수많은 시절 중 가장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이때, 이 황망한 '불안장애'는 제게 네 마음의 문을 열라, 호령하고 있는 걸까요? 선생님이 당부하신 대로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아봐야 했습니다. 일단은 약물처방을 받지 않고, 생활을 개선하고 문제를 직시하는 방법으로 병증을 케어해 보기로 약속을 했으니까요.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또 하고 싶었는 데 자의든 타의든 하지 못했던 것들은 또 뭔지 , 천천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마음 닿을 때마다 주저 없이 여행 가기
2-보기 싫은 사람 보지 않고 살기
3-명품 백 하나 가지기
4-책 쓰기
5-욕하고 싶을 때 욕하기
6-몸에 맞는 운동 꾸준히 하기
처음 마음을 먹었을 때는 한 100개쯤 목록을 채울 '할거리' 들이 고구마 줄기같이 줄~줄 이어져 나올 줄 알았는 데, 세상을 이만큼 살아오다 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순 없었답니다.
"에휴.. 참 안타깝네 겨우 이거야?"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이제부터는 절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해야만 하는 숙제가 주어졌기에 더 이상 탄식으로 세월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가장 쉽게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 고민하다, 매번 그 가격에 놀라 흠칫, 뒤로 물러서곤 했던 '명품백'부터 하나 사기로 했습니다. 명품 백 그까짓 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욕망이 슬금슬금 생기더군요. 뭐, 사회적 지위나 체면은 둘째 치고, 자기만족으로 말이죠. 아주 오래 '방송작가'라는 겉모습만 번드르르한 직업을 가지고 정신없이 살아오다 막 은퇴한 저를 위한 '선물'인 셈이죠. 마음만 먹고 실행하지 못했던 첫 번째 일, '명품백'을 하나 가져보자! 커다랗게 가슴에 새기고 나니, 어느새 밖은 캄캄해지고 다시 텅 빈 적막이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