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둘이 먹다 셋이 웃을 맛, 납작 만두

대구 10味, 그 첫 번째

by 초린혜원

우연히 틀어둔 tv 프로그램에서 먹방계 강자인 개그우먼 김민경의 먹방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직접 기르고 수확한 채소와 데친 오징어를 넣어 버무린 매콤한 무침을, 납작 만두로 쌈처럼 싸서 먹는 장면이 화면을 꽉~채우며 오래도록 이어진다. 아!~짧은 탄식과 함께 절로 침이 고인다. 대구 출신이라면 누구나 앉은자리에서 공감하고도 남을 추억의 맛이 아니던가.


도시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내 고향에선 그 옛날 신선한 횟감을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숙회'이다. 익혀서 먹을 수 있는 오징어나, 고동, 소라 같은 식재료에 갖가지 채소를 듬뿍 넣어 최대한

맵싸하게 버무린 무침회가 오래전부터 활어회의 대안으로 자리했음이다. 지금도 이 무침회를 대표 메뉴로 하는 먹거리 골목(반고개)이 있을 정도니까.


아무튼, 대부분의 지방에선 신선한 활어회를 상추나 깻잎, 하다못해 묵은지에 싸서 먹곤 하지만. 익힌 횟감으로 만들어 매운 무침회는 이런 것들과는 음식궁합이 딱 들어맞진 않았던 거 같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책이 바로 우리 지역의 명물, 납작 만두였던 거다.

대파를 쫑쫑 썰어 곁들인 간장양념도 맛있다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지져낸 납작 만두로 무침회를 싸서 먹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매운 무침회도 술~술 잘 넘어가고는 한다. 아마도 노릿한 기름기가 매운 기를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맡는 거 아닐까. 누구 말마따나 속이라고는 당면 조금에, 부추 몇 쪼가리가 전부인 납작 만두의 본질은 이렇게 다른 어떤 것들과 어울리고서야 더 제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떡볶이에 납작 만두를 얹어먹는 것도 일상다반사다. 쫄면을 돌돌 말아 납작 만두로 싸 먹는 맛은, 다른 지역 출신들에게 알려주고, 한편으론 부심을 부리며 자랑까지 하고 싶은 맛이다. 지극히 소박하지만 긴~여운의 맛을 가진 납작 만두. 한동안 만두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그 카테고리엔 얼씬도 못하고 하찮은 취급을 받던 이 납작 만두가, 매운 음식들과의 기막힌 조화로, 요즘 재평가되고 있는 거 같아 내심 흐뭇하다. 언젠가 납작 만두를 먹다, 문득 휘갈겨 쓴 시 한 편을 기억저장소에서 꺼내 붙여본다. 모든 기억들 중 가장 오래면서도 쉬 지워지지 않는 것들은 음식에 관한 기억이란 게 새삼 놀랍고, 수많은 기억들이 왜 매번, 먹는 걸 즐기지도 않는 내게로 와 이토록 사무치는지 궁금하다.


납작 만두/시-김혜원


바람의 움직임이

나무 이파리 하나를

툭! 건드려

춤추게 하는 날이면,

남산동 미성당

납작 만두 생각이 나.


모든 것이 납작하게 엎드려

더 납작해질 수 없을 때,

내 뱃가죽도 납작납작..

멀리 뵈는 앞산 나무들도

덩달아 납작납작..

기름지게 구워지는 소리.


그냥 '납작'이 아니라

'납짝' 이라 불러주고 나서야

별스러울 것도 없는

세상 가장 얇은 그리움은,

비로소 내 것이 되지.


커버사진출처/대구 광역시청 공식 블로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