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시선 당신은 왜, 내 맘 앗아갔나요?

정세랑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 리뷰

by 초린혜원

※이 글은 대구 서구청 '공공의 뉴턴사과' 프로젝트 결과물인 -마을을 담은 신문/ 마담 페이퍼/에 실렸습니다.


심시선, 당신을 만난 건 민족의 명절이라 불리는 추석 무렵이었어요. 어쩌면 당신과 추석, 그렇게 운명적으로 페어링 된 두 고유명사가 내게로 왔던 건 신이 설계해 놓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했었죠. 당신이 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혜원, 그건 정말 너무 앞서나간 거 같은데?” 라고 호쾌한 웃음소리로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어요, 전 정말이지 당신이 tv토론 ‘21세기를 예상하다’에서 사회자를 향해 일갈한 그 처음의 문장에 홀려버렸으니까요! 제사문화에 반대하며 본인 사후에도 제사를 거부할 거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당신은 가차 없이 “그럼요,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할 관습입니다.”라고 쏘아버렸잖아요.


당신이 21세기를 예상하며,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합리적인 소신을 밝혔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여성들(물론 저도 당연히 포함입니다)이 자신의 피붙이도 아닌 ‘조상’ 들을 위해 형식의 틀 안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상다리 휘어지게 제사상을 차리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당신이 지적한대로 ‘형식만 남고 마음은 사라진’ 생고생을 속울음을 울며 행하고 있으니까요. 그때가 마침 ‘추석’ 이었고, ‘제사’ 라는 견고한 형식 앞에서 합리성은 무용지물이 되는 경험을 아주 여러 번 할 수밖에 없었던 21세기를 사는 저는, 그들은(대한민국의 며느리들), 당신의 등장 앞에 조금은 열광하기도 하고, 이 낯선 쾌감을 뒤꼍의 담벼락에서 공유하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일갈로 시작된 당신의 행적은 내 마음을 여기저기로 일렁이게 했습니다. 굳이 이유를 물어 오신다면 당신이라는 한 객체가 마치 산탄총에서 발포된 총알처럼 무수하게 흩어져, 당신의 수많은 자손들에게 하나하나 꽂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해두죠. 할머니인 당신과 며느리인 난정 그리고 그 딸인 우윤으로 이어지는 희한한 ‘연대감’ 은 당신의 성정을 빼다 박은 ‘우윤’ 의 관심사와 행동에서 타오르기도 하고, 마치 생이 다할 때까지 읽고 또 읽겠다는 며느리 ‘난정’ 의 삶의 행로에서는 그 연대의 끈끈함이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로 발화돼, 당신이 어쩌면 그 어디선가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답니다. 당신의 10주기, 당신의 모습 한 부분을 제각각 닮아 있는 자손들은 당신의 제사를 하와이에서 지내기로 합니다. 물론 이들이 지내려는 ‘제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제사’가 아님을 당신도 인지하셨을 겁니다.

공공의 뉴턴사과 프로젝트/마담 페이퍼

머나먼 이국의 땅 코넬리우스에서 볕이 아닌, 넓고 넓은 공간이 아닌‘다락에, 그늘에 존재했던’ 당신의 지난한 삶을 되새기고, 아름다운 재능을 한 폭력적인 사내로부터 강탈당하고 개인의 시간조차 부정당했던 그 삶으로부터, 그런 사내가 유명한 화가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사후에 닥쳐온 유럽의 증오를 받아내며 재능 있는 화가를 파멸로 몰아넣은 아시아 마녀라는 숱한 추문으로부터 당신을 탈출시키고 해방시킨 건, 결국 삶을 끈덕지게 버텨냈던 당신의 몫이었던 걸, 당신의 영특한 후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리고 싶었을 겁니다. 당신이 스스로 쌓아올린 업적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타오르고 있는지를 당신에게 ‘기리는 형식’을 통해 알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군요.


혹자는 당신이 결혼을 몇 번씩이나 하고,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이 있지만, 타국을 유령처럼 떠돌다 민애방이라는 인물의 도움으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운 좋게도 또 시대를 잘 만나, 계층과 지위, 직업마저 바뀌는 신분세탁이 가능했다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후손들이 굳이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당신의 유언까지 어겨가며 독특한 형식의 추모를 하고자 했던 것에, 전 아주 격하게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타국을 떠돌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냈던 ‘심시선’ 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경외심, 당신의 아들과 딸이, 그리고 손주들이 ‘10주기 제사’를 통해 서로에게 나누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했으니까요. 왜 굳이 그 장소로 하와이를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내내 들었지만, 명혜의 말을 통해 또 끄덕일 수 있게 됐죠. 하와이의 폐쇄적이지 않은 범위 설정, 말하자면 공동체에 누가 속할 수 있을지 넓게 열어두고 다른 문화와 인종을 끌어안는 포용성이 그곳에는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당신이 오랜 시간동안 타국을 떠돌며 경험했을 불편한 시선들을 ‘하와이’ 라는 열린 공간에서 위로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시선 여사 닮았으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돌아오는 길, 공항에서 내 뱉은 당신의 딸, 명혜의 이 한마디는 당신의 행적이, 당신의 그 모든 언어가 얼마나 당신의 자손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실감하게 하는 부분이었죠. 당신의 삶이 비록 세상의 날선 잣대로 본다면 평범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적어도 당신의 가계도에서는 거대한 뿌리가 돼 있고,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고 있다는 걸 낱낱이 일깨우는 부분이기도 했구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같이 아름다움을 발견해냈던 당신, 자손들이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따뜻한 손으로 그 등을 앞으로 밀어주는 당신, 당신은 당신의 내력이 자손들에게 이토록 고스란히 투영되기를 원했던 건 아닌가요?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전 그들 삶의 발자취에서, 대화 중 펄떡이는 언어에서, 굴곡과 균열의 틈에서, 시선, 당신의 흔적을 발견하고야 말았으니까요.

아마도 당신은 그곳에서 당신의 삶이, 삶에 대한 고민이, 자손들에게 골고루 분배돼 가끔은 ‘시대’라는 증폭장치에 의해 확산되기도 하고, 아주 간혹은 의미를 잃고 소멸되기도 하는 것을 지켜보며 남모를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이젠 그런 미소마저 거두고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지나온 그 세기의 여성들이 지닌 마음의 절벽이 지금 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절벽의 가파르기는 아주 조금씩 완만해지고 있음을 전해드리고 싶군요. 전쟁 같은 나날들 속에서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려 애쓰는 21세기의 한 여인이, 20세기로부터 21세기를 예견하고 선언한 그 혜안에 무한 경의를 표하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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